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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문화도시 2.0’이 가져야 할 가치와 철학- 손경년(김해문화재단 대표이사)

  • 기사입력 : 2022-11-14 19: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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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26~ 29일 제주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2022 문화도시박람회&국제컨퍼런스’가 열렸다. 문체부,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된 18개의 도시가 자발적으로 결성한 ‘전국문화도시협의회(의장도시 김해시)’가 주최했고 서귀포시와 서귀포문화도시센터, 지역문화진흥원이 주관한 행사였다.

    여기서 이탈리아 키에티-페스카라 대학교 교수이자 전 EU문화정책자문관인 피에르 루이지 사코가 기조발제를 했다. 그는 도시발전 축으로서 문화의 중요성을 지적하면서 창조산업으로서의 문화의 성장과 더불어 최근 경향으로 오픈 플랫폼으로서의 문화를 강조했다. 그는 문화도시의 긍정적인 사례로 2004년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된 프랑스 도시 릴(Lille)을 언급했다. 얼마 전 법정문화도시의 철학과 비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강조한 ‘문화도시 2.0’을 문체부가 발표했는데, 여러 면에서 릴 시의 사례가 주는 함의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릴은 프랑스 동북부 노르파드칼레 주에 위치해 있고, 프랑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서부 지역까지 아우르는 철도 교통의 요지이다. 1970년대 들어 주산업이었던 광업과 직물 산업이 경쟁력을 잃기 시작하자 릴 시가 점차 쇠퇴, 도시 이미지가 우중충하게 변모했다고 한다. 1973년 취임, 28년간 재임한 피에르 모로아 시장은 도시를 살릴 돌파구로 ‘유럽철도 허브로서의 릴’이라는 도시발전전략을 수립했고, 유라릴(Euralille)’이라는 새 역사(驛舍) 건립을 위해 유라릴 메트로폴 민관합자 개발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유라릴 메트로폴은 사업 수행을 위해 8명의 건축가를 초대, 총괄 책임 건축가로 네덜란드 건축가 램 콜하스를 선정했다. 유라릴 메트로폴 개발회사는 도시설계의 구체적인 디자인이 아닌, 지리적 이점과 도시자체에 대한 철학을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도시재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기존의 공간들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지원을 적극적으로 한 점, 그리고 주민의 자발성을 끌어내고 시민들에게 도시에 대한 자부심을 불어넣게 한 프로그램 가동, 인접 도시와의 전략적 동반을 통해 경쟁이 아닌 상생적 방식을 선택한 것이 특징이었다.

    문화도시를 위한 ‘릴 2004’의 실천 계획을 좀 더 살펴보면, 193개의 중소도시와 벨기에 등 인접도시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 지역권을 형성토록 했으며, 이 도시들을 각자의 방식대로 ‘릴 2004’의 로고를 공식적으로 사용, 활용하면서 유럽 문화수도의 효과를 함께 누렸다. ‘릴 2004’은 여타 유럽 문화수도에 비해 지역주민의 참여가 아주 잘 이뤄진 것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1만70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릴 2004’ 홍보대사로 참여하면서 유럽 문화수도의 원동력이 됐다. 이들은 릴 시의 문화행사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도시 혹은 지역을 대표하기도 했고, 서로 유대를 맺으면서 다른 문화행사들이나 다른 지역권을 돕고자 했다. ‘릴 2004’는 65만명의 방문객과 함께 개막 축제부터 폐막행사에 이르기까지 공연, 전시, 축제, 도시공간 바꾸기 등 무려 2500여 개에 달하는 행사를 시민들에게 제공했다.

    우리나라 법정문화도시 사업은 유럽 문화수도와 달리 이제 겨우 3년을 보내고 있다. 릴 시 사례를 올해 다시 살펴보니, 문체부가 발표한 ‘문화도시 2.0’의 가치와 철학에 대해 자세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문화도시를 만들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실패와 부족한 점에 대해 “놓친 사냥감에 대해 생각지 말고 잡아먹었던 먹이를 생각하라”는 말처럼 고민과 성찰의 과정을 통해 지역 스스로 해법을 찾아 나가고, 중앙정부는 이를 보충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손경년(김해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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