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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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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큰 거인의 비애 ‘말판증후군’] 큰 키 뒤에 숨겨진 더 큰 고통

세포 간 결체조직 구성하는 단백질 이상으로 발병
비정상적인 큰 키·마른 체형·긴 팔다리 등이 특징

  • 기사입력 : 2022-11-13 20: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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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창시절 전교에서 키가 가장 컸던 A씨는 어느 날 갑자기 심한 흉통이 느껴져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CT 검사 결과 대동맥이 늘어나 혈관 벽이 손상되는 급성 대동맥박리로 진단받은 A씨는 심장에서 바로 나오는 상행대동맥을 인조혈관으로 대체하는 응급 수술을 받았다. 이후 약물 치료를 계속하였으나 찢어진 대동맥의 나머지 혈관이 풍선처럼 계속 늘어나, 결국 2차례에 걸쳐 대동맥 수술을 받고 몸 전체 대동맥을 인조혈관으로 바꿨다.

    A씨는 전형적인 말판증후군의 예로, 심혈관 분야의 희귀질환이다. 희귀질환의 정의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해져 있는데, 유병인구가 2만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을 뜻한다. 심혈관계 희귀질환으로는 유전질환인 말판증후군을 포함한 다양한 유전성 대동맥류와 대동맥박리증, 비후형심근증, 확장형 심근증, 폐동맥고혈압, 유전성 혈전증 (C단백 결핍증, S단백 결핍증, 항트롬빈 III 결핍증), 타카야수 동맥염을 포함한 여러 가지 류마티스 질환에 의한 대동맥염 등이 있다. 이처럼 병명이나 원인이 이미 알려진 희귀질환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직 진단 안 된 병, 심지어는 전 세계에서 처음 규명되는 극희귀질환도 있다.


    환자 수가 드문 희귀질환은 의료진의 임상경험이 아무래도 적다 보니, 진단이 어려워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오진으로 적절한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

    또 희귀질환의 대부분은 유전질환이다. 유전성 심혈관계 희귀질환의 경우, 대부분 강한 가족력을 보이는 상염색체 우성 질환이기 때문에 가족 검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동맥박리와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을 미리 예방할 수 있음에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미리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경우 그 질환에 맞는 특별한 약이나 예방적 수술을 통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말판증후군은 대표적인 심혈관계 희귀질환으로, 키가 크고 손발이 길었던 유명 운동선수나 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 등이 말판증후군이었을지 모른다고 의심되기도 한다.

    우리 몸은 세포 간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결체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결체조직을 구성하는 피브릴린(fibrillin)이라는 단백질에 이상이 있으면 근골격계와 심혈관계, 눈 등 전신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피브릴린 결핍으로 발생하는 말판증후군은 시력저하(수정체 탈구나 망막박리), 흉곽기형, 심장 및 폐 문제, 큰 키와 마른 체형, 가늘고 긴 팔다리와 손 발가락 등의 증상을 보인다.

    말판증후군 역시 강한 가족력을 보이는 상염색체 우성 질환으로, 본인이 처음부터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을 확률이 반반이다. 한쪽 부모가 말판증후군인 경우 자녀에게 말판증후군이 발생할 확률은 50% 정도이기 때문에, 가족 전체의 조기 진단과 치료로 예방이 필수인 질환이다. 그러나 가족력 없이 본인에게 돌연변이가 처음으로 생겨 발병하는 경우도 약 50% 정도다.

    말판증후군이 위험한 이유는 피브릴린 결핍으로 대동맥의 탄력 조직에 이상이 생겨 대동맥이 지속해서 늘어나다 결국 대동맥류(대동맥이 풍선같이 늘어난 상태)나 대동맥 박리(대동맥 내막 파열로 인한 혈관벽이 찢어진 상태)와 같은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신속하게 수술받지 못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이처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말판증후군의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검사와 지속적인 관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말판증후군은 특징적인 근골격계 양상, 눈 이상, 심혈관계 이상 등의 임상 증상과 혈액 유전자 검사, 영상 검사를 종합해 진단한다. 심장초음파나 CT, MRI로 비교적 정확하게 심장과 대동맥의 이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조기에 진단할 경우 치료 성공률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아직 말판증후군의 근본적인 치료법은 개발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증상 및 진행 정도에 따라 혈관 확장을 막고 맥박 수를 감소시키는 약물치료를 먼저 시작하고, 이후 경과에 따라 수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약물·수술적 치료 못지않게 환자의 노력도 중요한데, 대동맥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심한 운동은 피해야 한다. 만약 운동하고 싶다면 에어로빅이나 자전거, 조깅 등 가벼운 운동이 좋다.

    말판증후군과 같이 희귀질환의 경우 국가에서 여러 가지 혜택을 준다. 희귀난치성 질환 산정특례로 지정돼 의료보험 및 요양급여비의 본인부담률을 10%로 경감해주고,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 등 다양한 복지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성인 남성의 경우에는 군 복무가 대부분 면제된다. 또 유전질환의 경우 유전자 선별 시험관아기 시술을 통해 대물림을 차단할 수 있다.

    성균관대학교 삼성창원병원 순환기내과 김덕경 교수는 “정확한 희귀 심혈관 질환 진단 및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숙련된 전문의에게 진료받는 것이 좋다. 디지털 영상 기술, 분자진단기법 등 다양한 최첨단 기법을 활용해 진단명을 밝히지만 현대의학이 아직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원인 규명이 안 된 무수한 질환들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양영석 기자 yys@knnews.co.kr

    도움말=성균관대학교 삼성창원병원 순환기내과 김덕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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