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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토지문학제가 사라졌다- 김일태(시인·토지문학제 운영위원)

  • 기사입력 : 2022-11-02 19: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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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 한 달이 어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코로나19로 제대로 열리지 못했던 행사들이 봇물 터지듯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 놓친 일이 없었는지 10월 일정을 펼쳐놓고 꼼꼼히 챙겨 보다가 깜짝 놀랐다. 해마다 다른 일정에 우선하여 참석하던 토지문학제가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박경리 선생님과의 각별한 인연과 문학인으로서의 토지문학제에 대한 깊은 관심, 더구나 오랫동안 토지문학제 운영위원을 맡아오고 있었던 터라 아뿔싸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흔한 모바일 초청장 하나 없었나 싶어 주관처에 연락해 보았더니 올해 행사가 갑자기 취소되었다고 했다. 상반기까지 대대적으로 홍보하더니 갑자기 왜 그리되었느냐고 물었더니, 구체적인 이유는 말할 수 없고 하동군의 비공식적 입장으로는 내년 상반기 야생차 축제 기간에 개최하는 걸 고려 중이라 했다. 어이가 없었다. 행사의 존폐 문제 같은 막중한 사안이 아닌 행사의 자질구레한 사안까지 운영위원회를 통해 심도 있게 논의 결정하던 관행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결정은 운영위원들을 무시하는 행위를 넘어 상식 밖의 처사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22년을 한결같은 열정으로 토지문학제를 가꾸어 온 운영 조직이 보이콧했을 리도 없고, 주말 휴일인데도 한 마디 불평 없이 현장에 나와 헌신적으로 지원하던 실무공무원들이 앞장섰을 리도 없고, 토지문학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응원해온 지역민들이 민원으로 훼방했을 리도 만무하고, 이미 예산도 확보되어 추진 중인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판단과 지시로 토지문학제를 폐지하게 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토지문학제는 국보급 문화자산인 박경리 선생의 문학정신과 너른 모래벌을 품고 평화로이 흐르는 섬진강, 그리고 황금빛 넘실대는 평사리의 아름다운 가을 풍광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멋진 축제이다. 그런가 하면 문화관광 콘텐츠 산업 차원에서 투자 대비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이상적인 축제로서 ‘관광 하동’, ‘문학과 예술 하동’을 견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문화행사가 10년이 넘으면 주최 측의 자산을 넘어 공공재로 정착된다. 이는 주최 측 마음대로 없앨 수 없는 공공의 자산이란 뜻이다. 토지문학제는 하동군의 행정과 재정적 지원이 컸지만, 실무진들의 헌신적 노력과 지역민들의 변함없는 성원 그리고 전국의 수많은 문인의 참여와 응원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하동군수나 고위공직자가 개인적인 정무적 판단이나 취향에 따라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존폐를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내년도에 전혀 성격이 다른 단발성 행사의 들러리로 옮겨 개최하는 방법도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라지만, 토지문학제의 정체성을 무시하는 것도, 또 매년 수립하여 집행하는 예산을 내년으로 억지로 넘기는 일도 석연찮다.

    필자는 언론사에 재직할 때 취재나 지역의 문화사업 관련 일로 국내외의 여러 문화사업 현장을 다녀온 적 있다. 100년 된 문화사업도 한순간 방심으로 그동안 쌓아왔던 가치가 무너지는 사례와 함께 지도자 한 사람의 오판으로 한 번 휘청한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오랫동안의 세월을 소비하는 사례를 숱하게 보았다. 정치 경제는 한번 뒤틀어졌다가도 다시 살아날 수 있지만, 문화사업은 한번 크게 충격받으면 다시 회생하지 못하고 고사해버리는 속성이 있다. 주최 측의 운영 조직력과 노하우의 단절 등 추진동력 상실과 관광객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없는 끈기와 인내심 그리고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리더의 정치철학이나 지역 현안에 따라 자치단체의 행정 전략이 달라질 수는 있다. 시대에 따라 환경변화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권자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다고 해서 오랫동안 지역민들과 전국의 수많은 문화예술인, 그리고 관광객들로부터 박수받던 사업을 한순간 정당한 사유와 절차 없이 소멸시켜버린다는 것은 오만이요 전횡이다. 권력 가진 이들의 대오각성이 필요한 시기이다.

    김일태(시인·토지문학제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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