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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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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자산 기록 프로젝트- 마산어시장 알바들] (4) 리어카 과일 행상

100㎏ 넘는 과일 리어카 끌며 ‘반백년 장사꾼’의 길 누비다

  • 기사입력 : 2022-10-19 21: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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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어시장에는 둥근 바퀴가 많습니다. 부피가 크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이 많아 상인이고 손님이고 손수레, 오토바이 등 구르는 힘을 자주 이용합니다. 잠시도 가게를 비우기 어려운 시장 상인들을 위해 ‘찾아가는 서비스’를 자처하는 행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옷과 생활잡화, 이불까지 수레에 실어 상인들 앞에 섭니다. 어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성원들이지요.

    오늘 일할 곳은 어시장이지만 물 없는 일, 리어카 과일 행상입니다. ‘과일 구루마’라고도 불리는데요. 어시장 횟집들이 손님용 후식 과일을 사거나 상인, 어시장 방문객들이 간식을 구매하는 곳입니다. 마산어시장에서만 44년간 리어카를 끌어온 ‘의령댁’ 전말순(75) 선배님을 따라 어시장 바닥을 굴러봅니다.


    △오늘의 할 일

    -리어카에 과일 진열하기

    -과일 가격·홍보 노하우 외우기

    -리어카 과일 판매하기

    -선배님 인생 이야기 듣기

    이슬기 기자와 이아름 PD가 마산어시장에서 손님들에게 판매할 과일을 홍보하고 있다.
    이슬기 기자와 이아름 PD가 마산어시장에서 손님들에게 판매할 과일을 홍보하고 있다.

    ◇균형이 필요해

    8:30 어시장 근처 리어카 보관 점포 앞. 오늘 새벽 선배님이 주문한 과일들이 속속 도착합니다. 홍시와 캠벨포도, 머루포도까지 모두 오전 5시 30분부터 열리는 내서 마산 청과시장 경매에서 골라 온 것들입니다. 이 과일들을 1인용 침대만한 리어카 위에 진열하는 것부터가 일의 시작인데요, 무엇보다 균형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앞쪽에는 손이 잘 닿으니 단감 더미같이 봉지 단위로 파는 과일들을 놓고, 손잡이에서 먼 쪽에는 박스에 든 홍시와 포도를 놓습니다.

    담아 파는 단감이 두 종류라 섞이지 않게 가운데 나무막대기를 놓아 분리하고, 뒤편 박스 밑에 막대기를 ‘공구니(괴니)’ 과일들이 섞이지 않고 편안히 자리하네요. 놓는 각도와 손놀림이 예술입니다. 리어카 아래쪽에도 박스를 실어 무게 중심을 맞춘 뒤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무게와 수평을 가늠해봅니다. 과일을 하나 판매할 때마다 중심이 달라지니 좌판을 살펴줘야 하고요. “난주(나중에) 앞에 (감을) 팔아서 자리 비믄(비면) 뒤에를 끄잡아 당기(잡아 당겨서) 맞추야 한다이.”

    이 기자가 과일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밀고 있다.
    이 기자가 과일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밀고 있다.

    9:50 “아이고, 팔기도 전에 엎찔까봐(엎어질까봐) 불안타. 많이 파세요.”

    상인분들 응원을 받았으니 장사에 나서야 하는데 100㎏이 넘는 리어카를 드는 것부터 불안합니다. 좌우 균형을 맞춰 밀어야 하지만 허리보다 낮은 위치에 손잡이가 있어 자세가 엉거주춤하고 바퀴가 패인 곳을 지날 때면 심장이 내려앉습니다. 아름PD가 옆에서 리어카를 잡아주고, 전말순 선배님은 ‘허리를 펴라’고 주문하시지만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아 그 상태로 외칩니다.

    “홍시 1박스 만오천원 ~ 단감 15개 만원~ 맛도, 빛깔도 좋습니다~”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그 자리에서 맛도 보여드립니다. 때때로 리어카를 멈추고 햇빛 아래에서 홍시 박스를 들어 보여드리며 때깔을 강조했지요. 아름PD는 ‘아이들이 (얼린) 아이스 홍시 좋아합니다’며 손자들이 생각날 어르신들을 공략했습니다. 처음에는 긴장해 과일 가격도 헷갈려 했지만, 일이 익숙해지고서는 싼 가격을 먼저 불러 손님 발길을 이끈 후 가격이 높은 걸 보여드리는 노하우도 터득했고요. 거절도 잦았지만 구매한 손님들이 맛있다고 해주시고, 지난 편에 일했던 젓갈가게 사장님이 감을 사주셔서 힘을 얻었습니다.

    이 기자가 어시장 상인에게 홍시를 건네고 있다.
    이 기자가 어시장 상인에게 홍시를 건네고 있다.
    마산어시장 알바들이 손님에게 홍시와 단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산어시장 알바들이 손님에게 홍시와 단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설움으로 시작한 반백년 장사

    10:15 “돈 버리야 아를 키울꺼 아이가. 공부 시고 아 너이 키우고 미일라면 돈을 버리야지(돈을 벌어야 애를 키울 것 아니냐. 공부 시키고 아이들 넷 키우고 먹이려면 돈을 벌어야지).

    온전히 자신의 노동으로 경제력을 갖추는 데서 오는 당당함이 느껴지는 전말순 선배님의 장사 역사는 50년도 더 됐습니다. 1970년대 마산수출자유지역 옆 도랑가에서 여공들을 상대로 하는 ‘다라이(대야) 장사’가 시작이었거든요.

    “그땐 수퍼도 없었으니까 잘 팔렸지. 처음에는 집에서 호박죽 쑤고, 고구마·땅콩 삶아오고, 수제비도 끼리고(끓이고). 애 하나는 들처업고 하나는 같이 오고 그랬다.”

    이후 호떡과 오뎅을 파는 분식 리어카를 하다 접고 어시장에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합니다. 다리 밑이라도 좋으니 가족들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소망이 간절할 때였습니다.

    이 기자가 친정이 의령이어서 의령댁으로 불리는 전말순씨로부터 장사 역사를 듣고 있다.
    이 기자가 친정이 의령이어서 의령댁으로 불리는 전말순씨로부터 장사 역사를 듣고 있다.

    “애 넷이라고 주인들이 집을 안주는 기라. 어쩔 수없이 아(아이)를 숨가고(숨겨) 며칠 뒤에 하나 데리오고(데려오고), 또 데리오고. 아직 아인(아이에 불과한) 막내한테 그리 눈치를 주더라고. 내가 서럽고 한이 맺혀가…, 집 사고는 너무 좋아서 잠이 안 오더라.”

    리어카에 얹은 네모난 좌판을 비워낼 때마다 벽 하나, 창문 하나 올라가는 일을 생각하며 버텨냈을까요. 집과 땅을 사고, 자식을 키워낸 일이라 세 달 전 무릎 연골을 바꾸는 수술을 하고서도 다시 바퀴를 굴리러 나섭니다. 그렇게 리어카만 벌써 다섯 대 째. 찰진 욕도 늘었습니다. 이제는 주변 상인들에 과일도 나누고, 어르신들에 겨울철 양말도 선물하며 베풀고 살 수 있어 좋다 합니다.

    50년 세월이 쌓여 과일의 빛깔, 크기를 보면 맛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선배님 말씀으론 한 감나무에서도 맛이 다르고, 감 하나에서도 볼록하게 더 솟은 부분이 맛있답니다. 손님께 맛보여드릴 때는 이 부분을 베어 드려야 한다고 설명해주십니다. 선배님이 쌓은 두터운 신뢰는 상인분들의 말씀에서 확인합니다. “맛있다고 안해도 알아요. 의령댁은 맛있는 것만 갖고 오거든요.”

    단감을 홍보하고 있는 이슬기 기자.
    단감을 홍보하고 있는 이슬기 기자.

    ◇마산어시장 ‘인싸’는 매일이 잔칫날

    10:55 “의령 언니, 얼른 묵고 가라. 같이 와서 드세요.” 어시장 구석구석을 누비는 선배님은 모르는 사람이 없고 리어카 닿는 곳마다 선배님을 찾습니다. 어시장 수육파티 현장에서도 마찬가지. 지난 주말 옆 가게 자제분이 결혼을 해서 어시장 상인들에게 한 턱 내는 거라 하시네요. 수십년째 매일같이 보는 어시장 상인들은 서로를 ‘한가족’으로 여깁니다. 혼사, 백일, 돌, 제사 때 음식을 나눠 먹으니 선배님과 같은 ‘어시장 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에게는 매일이 잔칫날입니다. 느슨한 연대와 비대면에 익숙한 MZ세대들에게는 되레 불편한 지점일 수 있는데요, 얼굴을 맞대고 말을 섞으며 지낸 끈끈함, 동료애가 지친 몸과 마음을 강력하게 붙들어주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재밌제 시장, 너희도 한 일주일만 왔다 갔다 해봐라 다 기억한다. 한 집 오늘 안 나오면 어디 갔나, 놀러 갔나. 이틀째 안 보이면 어디 아픈가 걱정하거든. 그러고 나오면 (안부 물어봐줘서)고맙다 한다. 집에 식구(가족)들은 전화 1년 안해도 모른다. 어시장 사람들이 더 낫지.”


    ▶지역자산 기록 보고

    리어카를 밀며 색색의 파라솔 사이를 지날 때 지난 2020년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 최정화 작가의 ‘살어리 살어리랏다’ 전시가 떠올랐습니다. 화려한 장식이 달려 있는 낡은 나무 리어카(‘샹들리에+리어카’), 전기장판이 깔린 카트(‘따뜻한 방’), 천장까지 쌓아 올린 어상자(‘탑’)까지 어시장에서나 볼 법한 생활 속 물건들이 놓여 있었거든요. 실제로 마산 청과시장, 마산수협공판장에서 사용되고 있던 것들을 받아온 것이라는데요, 작품이 되기 전, 상인들이 전기장판이 깔린 카트를 직접 쓰고 있던 사진을 보니 일상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모호한 명제가 뚜렷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번 시장 나들이 때는 익숙한 풍경을 한 번 더 눈여겨 보면 어떨까요. 어느날 어시장에서 본 고무대야 하나, 앞치마 하나가 예술작품으로 미술관에 놓여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경남도립미술관 ‘살어리 살어리랏다’에 전시됐던 최정화 作 ‘샹들리에+리어카’./경남신문DB/
    경남도립미술관 ‘살어리 살어리랏다’에 전시됐던 최정화 作 ‘샹들리에+리어카’./경남신문DB/

    플라스틱 작가로 비즈니스 작가로 불리던 그는 이렇게 동네 사람들의 삶에 귀기울이고 그 삶의 흔적들을 전시실로 불러들여 너와 나를 만나게 하는 샤먼이 되었다. (중략) 당사자인 그는 이런 해석에 그다지 관심도 없겠지만 최정화는 생활 영역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여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는 미술의 고고함을 파괴하고 세속의 고귀함/ 아름다움을 펼쳐놓는 사람이다. -김재환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전시해설 ‘살았고 살고 살려는 세속의 고귀함’ 일부.

    글= 이슬기 기자·사진= 이솔희 V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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