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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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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일상(日常)- 김흥구(행복한요양병원 공감소통이사장)

  • 기사입력 : 2022-10-12 19: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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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반복되는 생활은 밋밋하다. 바람 든 무처럼 별 맛이 없고, 푸석푸석 하고 생기가 없다. 어제 일이 오늘처럼 오늘 일은 내일처럼 그저 그렇다. 허나 반전이 있다. 골절이나 질병으로 입원해서 환자 신세가 되거나, 코로나 확진으로 7일간 격리된 생활을 하거나, 힌남노와 난마돌 같은 태풍으로 수재민 입장이 돼 보면, 일상의 소중함이 오롯이 살아난다. 평소에 만족하고 살아야 하는 지침이자 삶의 묘미다. 과학과 기술을 앞세운 문명의 발달은 그 모양이 직선적이다. 속도나 그 형상이 일자로 쭈욱 뻗어 나간다.

    반면에 괴로움의 바다로 상징되는 인생은 굽이굽이 흘러가는 모습이 곡선형이다. 가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못 미치면 더 가기도 하며, 첩경이 없다. 우리는 여생(餘生)인 미지의 세계를 온전히 자신만의 생각과 의지로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정답은 없다.

    아침에 출근하면 커피 포트에 물을 끓인다. 보글보글 거품이 힘차게 차오른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보이차나 돼지감자를 우리고, 평소에는 커피를 마신다. 컵을 받히고 그 위에 기성품 플라스틱 용기를 대고, 그 위에 다시 종이 커피 필터를 올려서, 겉봉에 족제비 문향이 그려진 분말 커피를 담아 물을 부어 우려낸다. 은은한 향이 작은 옥탑방 사무실에 번진다. 누구나 비슷한 하루를 여는 풍경이며, 실존의 시간이다.

    반려견 마요는 우리집에 입양 된 양녀다. 아직 법 제정의 미비로 호적에 등재는 안됐지만, 함께 산지가 벌써 여러 해 됐다. 우리는 늘 저녁 산책을 한다. 마님의 지시 사항이다. 한시간 남짓한 동네 한 바퀴에 마요는 분주하다. 종종걸음으로 용변도 보고, 가로등과 군데군데 구역 표시도 하고, 나무 냄새도 맡고, 풀 내음도 맡으며 풀을 씹어 보기도 한다. 우리는 마요가 전생에 아마 식물학자나 조경업체 사장이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가을 바람이 분다.

    생과 사는 순간이고 찰나다. 들숨과 날숨 지간에 있다. 생사(生死)는 구름 한 조각이 생하고 구름 한 조각이 멸하는 가벼움 속에 있다. 허허로운 인생사의 단면이다. 생과 사는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의 인연으로 왔다가 지수화풍 4대의 분화로 돌아간다. 49일간의 휴가를 받아 잠시 쉬었다가 다시 현역에 배치된다. 이것이 윤회의 굴레다. 동행자는 업(業·karma)뿐이다. 살아 생전에 신구의(身口意)로 지은 행위만이 함께 간다. 업은 가혹하게도 한치의 오차가 없다. 행한 그대로 돌려 받는 것이다. 인간의 희로애락 또한 업의 파장이, 도래한 시절 인연과 만나 빚어내는 허상이다. 일상의 무료함과 따분함은 때로 장황함과 허황함을 소환한다. 마치 9갑자 무림의 고수, 통영어복(統營漁福)의 일대사를 그린 무협지의 한 장면처럼.

    배움의 길은 언제나 험난하다. 늘 그렇다. 수영도 그렇다. 일단 수영은 체력 소모가 많은 운동이다. 쉼 없이 계속해야 하는 대책 없는 발차기가 그렇고, 음~파 호흡은 물을 먹기 십상이다. 수영은 힘든 운동이다. 일단 총체적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배정해야 한다. 목이 뻣뻣하고, 어깨가 결리고, 오십견 증상이 오락가락할 때, 전문가의 소견은 단호했다. 수치료! 수영을 하시오. 북면 감계복지센터 내에는 수영장이 있다. 아이들도 이용하고, 학생들도 이용하고, 어른들은 애용한다. 수영장은 늘 붐비고 활력이 넘친다. 배우려는 이들의 열기와 가르치는 자들의 열정이 어우러진 교육장이다. 나는 운동 신경이 둔하다. 초급반 탈출이 요원한 일이지만 처마끝 낙수물이 돌을 패듯이 느릿느릿 하루하루 즐기고 있다.

    삶은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거기도 있다. 삶은 늘 무덤덤하고 펑퍼짐한 일상과 함께 한다. 어느 덧 삶은 이미 반환점울 돌아 비척거리며 걷고 있지만, 고개 너머 종착지는 어디쯤인지 알 길이 없다. 벌써 가을이 깊어간다.

    김흥구(행복한요양병원 공감소통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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