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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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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함께 하면 멀리 간다- 이재달(전 MBC경남 국장)

  • 기사입력 : 2022-10-05 19: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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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러기 떼는 언제나 역 V자 대형을 유지하며 하늘을 날아간다. 그렇게 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기러기는 먹이와 따뜻한 곳을 찾아 통상 4만㎞를 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거리를 날려면 무엇보다 힘을 비축해야 한다. 역 V자 대형을 유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대형의 꼭짓점인 맨 선두에 선 기러기가 날개를 퍼덕이면 날개에서 작은 공기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이는 날개 바깥쪽에서 공기의 흐름을 위로 올라가게 하고, 이러한 공기의 흐름 덕택에 뒤쪽에 선 기러기는 날갯짓을 작게 해도 된다. 역 V자 대형으로 비행하면 혼자 날 때보다 힘을 71%나 적게 써도 된다는 연구가 있다.

    이 편대 비행에는 맨 앞에 선 리더 기러기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선두 자리에는 힘이 센 놈이 아니라 그날 컨디션이 가장 좋은 기러기가 서는데, 비행 동안에는 여러 기러기가 돌아가며 선다. 먼저 선 기러기가 지치면 뒤쪽으로 물러나 힘을 비축하고 대신에 다른 기러기가 선두 자리로 나서 대열을 이끈다. 뒤따라 날아가는 기러기들은 계속해서 꺼억 꺼억 울음소리를 내며 앞서가는 기러기가 힘을 내도록 응원과 격려를 한다. 만약 비행 도중에 지치거나 낙오하는 기러기가 생기면 합동작전이 벌어진다. 대열에서 이탈한 기러기 곁으로 순식간에 두 마리가 따라붙는다. 다시 정상적으로 날아서 원래 대열에 따라붙거나 다른 기러기 대열에 합류할 때까지 함께 한다.

    기러기의 편대 비행을 보면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는 함께 해서 목표를 달성한다는 점이다. 4만㎞는 엄청난 장거리여서 홀로 비행할 수 없는 거리다. 그런데 무리를 지어 역 V자 편대 비행을 함으로써 힘을 아껴 장거리 비행을 가능하게 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격언 그대로다.

    둘째는 바람직한 팔로워십(followership)을 배운다. 리더십의 상대적인 개념인 팔로워십은 부하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특성과 행동을 의미한다. 기러기는 선두에 선 리더가 힘을 내도록 끊임없이 응원하며 격려한다. 그리고 지치면 뒤쪽에서 편히 비행하도록 다른 기러기가 앞으로 나가 역할을 대신한다. 터무니없이 요구만 하는 우리와는 달리 배려를 실천한다. 리더는 한 조직의 명운을 짊어지고 있어 리더가 잘되어야 조직이 바람직하게 운영된다. 리더를 응원하는 것은 구성원의 책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낙오자를 끝까지 챙기는 동료애다. 대열에서 낙오한 기러기가 다시 힘을 낼 때까지, 심지어 힘에 부쳐 죽으면 마지막까지 챙긴다. 빈곤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우리 이웃들을 생각하면 기러기의 동료애야말로 정말 숭고하기 짝이 없다.

    우리 사회는 기러기 세계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간혹 든다. 기러기처럼 함께 가는 비행을 택하지 않고 쉽게 보이는 홀로 가는 비행을 택한다. 예컨대 공공재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지 수돗물 문제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 수돗물을 신뢰하지 못한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예산을 투입해 수돗물 개선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동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이보다 더 신속하고 쉬운 독자적인 해결 방법을 찾는다. 그래서 고작 한다는 해결책이 가정에서 정수기를 장만해 물을 마시거나, 아니면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것이다.

    기러기가 역 V자로 장거리를 비행하듯이 우리도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함께 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선두 기러기와 뒤에 선 무리가 화답하며 먼 거리를 가는 것처럼 우리도 호흡을 맞추며 동행해야 한다. 선두 기러기가 힘이 빠지면 뒤에서 편히 날도록 하고, 다른 기러기가 대신 서듯이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가야 할 길이 멀수록, 해결할 문제가 많을수록 기러기처럼 함께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재달(전 MBC경남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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