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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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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법정 드라마를 보면서 하는 기대- 김대군(경상국립대 윤리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22-10-04 19:2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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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을 가리키는 말 중에 콜링(calling)이란 말이 있다. 우리 말로는 직업, 천직(天職), 소명(召命)이라 번역해서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직업은 내가 선택했다기보다는 하늘이 나한테 맡긴 일임을 강조할 때 콜링이란 말을 쓴다. 어떤 직업이든 직업생활에서 짓는 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내 맘대로 하기보다는 하늘이 나한테 역할 분담을 해준 뜻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의 부름에 응하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직업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들을 하게 된다.

    직업생활이 신의 부름에 응하여 신의 뜻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라면 신의 뜻은 무엇일까? 이리저리 따져봐도 간단하게 말하면 직업생활에 원형이정(元亨利貞)이 있는 것, 흔히 하는 말로 윤리가 바로 서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음식업을 한다면 그 집 음식을 먹고 기운을 내서 다음 일을 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것, 집을 짓는다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안식처로 삼고 집 밖으로 나가서 일을 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받쳐주는 것이 신의 뜻일 것이다. 구두를 닦든, 학생들을 가르치든, 정치를 하든 각각의 직업에는 그 직업을 바로 세우는 원형이정, 윤리가 있는 것이다.

    원형이정이 있다는 말은 어떤 일이나 사물, 사람에게 있어서 진선미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흔히 천하거나 귀한 직업이나 일, 사람이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귀천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잣대로 보는가에 따라서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원형이정이 있고 없고로 보면 좀 더 분명 해지는 듯하다.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엄한 부모가 원형이정을 갖추고 있으면 가난해도 아름답고 감동을 주지만 가난해서 이것저것 훔치고 해치는 생활을 한다면 원형이정이 빠진 것으로 그냥 천하게 여겨진다. 부와 권력도 마찬가지다. 부와 권력을 가지고도 원형이정이 빠져 있으면 진실도, 올바름도, 멋도 사라지고 만다. 윤리가 도외시된 부와 권력은 흔히 침을 뱉고 싶다고 할 정도로 추하기 그지없다.

    요즘 정치판에서는 거짓말 논쟁이 한창이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누구나 동의를 하지만 하얀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로 예외를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거짓말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거짓말 그 자체가 안된다는 사람들도 있고, 좋은 의도로 하는 거짓말이나 좋은 목적을 위한 거짓말은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정치판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항상 여론이 엇갈리고 빠져나갈 구멍이 남아있게 된다.

    그렇더라도 정치판에도 원형이정이 있다는 것을 잊고 꼼수에 빠져 있으면 점점 더 추해지고 힘을 잃게 된다는 점을 정치인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았으면 하늘의 부름에 따라 하늘의 뜻을 실천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원형이정을 걷어차면 진선미 모두를 잃게 된다. 거짓말을 했니 안 했니를 밝히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추한 모습으로 기억하게 되면 국민으로부터 얻게 되는 힘도 권위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검사, 변호사가 이끄는 드라마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데 ‘소년심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빅 마우스’ 등 지나간 드라마만 돌이켜 봐도 원형이정을 쥐고 있으면 검사든 변호사든 멋과 힘이 느껴진다. 원형이정을 걷어차면 검사가 조폭에게 굽실대고, 변호사가 양아치에게 끌려다니는 데 그렇게 추할 수가 없다. 법정 드라마들의 유사한 플롯에도 계속 회자되는 것은 현실 정치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이 드라마에서처럼 멋있고 힘 있는 판검사, 변호사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 정치판에서도 원형이정이 빠진 추하고 힘없는 정치인들 대신 원형이정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힘 있는 정치인을 진심에서 지지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김대군(경상국립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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