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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3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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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 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11)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오지마을에 처음 신문 배달된 날, 마을정자에선 ‘달콤한 생일잔치’도

  • 기사입력 : 2022-09-25 2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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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 신문이네요? 신문은 처음 배달하네.”(집배원)

    “아이고, 잘 왔네요! 다행입니다.”(심부름꾼)

    지역소멸 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취재팀 ‘마기꾼들(마을기록꾼들)’이 의령군 궁류면 입사마을을 찾은 지난 21일 수요일 오전. 입사마을 경로당 입구에 선 우체국 집배원이 마을로 온 우편물을 한데 모아 전달하면서 그 안에 있는 종이신문을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오지마을에 처음으로 배달된 일간지를 전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는데요. 입사마을 ‘입사’ 11주가 된 마기꾼들도 느리게 배달된 신문 덕분에 이 순간을 함께 했습니다.

    의령군 궁류면 입사마을 경로당에서 신상도씨가 우편으로 배달된 경남신문을 읽고 있다.
    의령군 궁류면 입사마을 경로당에서 신상도씨가 우편으로 배달된 경남신문을 읽고 있다.

    ◇마을에 처음 배달된 ‘느린 신문’, 추억을 붙들어놓다= 배달된 신문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경남신문입니다. 약속한 3개월 간의 취재가 어느덧 종반으로 접어든 이달 중순, 마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신문사에서 구독료를 내고 1부씩 보내주기로 한 것이죠. 마기꾼들과 마을 어르신들의 연결고리가 되기도 하고요.

    이런 사연으로 배달된 신문은 그러나 날짜가 이틀이나 지난 9월 19일 월요일자 조간입니다. 보통 전날의 중요한 소식을 전하는 종이신문 특성상 제때, 그러니까 그날 배달되더라도 방송·인터넷 뉴스보다 하루 느린데 여기서 이틀이 더 늦었으니 사실 ‘신문의 생명을 다한 신문’을 배달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배달 사고’가 난 거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집배원은 잘 배달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읽고 계신 월요일자 조간신문이 당일 아침에 배달되기 위해선 전날인 일요일 밤 신문사에서 편집을 마치고 쇄출(刷出)된 신문을 경남지역 각 시·군 신문지국에 전달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전달받은 각 지국에선 월요일 새벽부터 아침까지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신문을 배달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디지털 중심의 언론환경의 변화로 종이신문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발행부수가 감소하다보니 신문을 배달하는 지국 숫자가 줄어들거나, 지국이 단거리만 배달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겁니다. 경남신문 독자서비스국에 따르면, 입사마을이 있는 의령의 경우 의령지국이 군 소재지가 있고 인구가 가장 많은 의령읍을 중심으로만 당일 신문을 배달합니다. 그보다 더 멀고 인구가 적은 면(面) 지역의 경우에는 신문사에서 신문을 일반우편으로 보내다보니 당일 배달은 어렵습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3일까지도 우체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입사마을 경로당에 이틀이나 늦게 신문이 배달된 사연에서도 지역소멸 위기를, 그리고 ‘신문소멸 위기’를 실감할 수 있군요.

    “신문에 이래 크게 사진도 실리보고. 오래 살고 볼일이다, 오래 살고 볼일이야.”

    “와 아이라(왜 아니겠어).”

    이틀이나 늦게 배달돼 신문으로서의 가치가 없을 것 같지만, 사람들이 모여 펼치는 순간 가치는 살아납니다. 진하게 탄 믹스커피 한잔을 각자 손에 든 빈달성(83)·윤기연(80)·신상도(67) 어르신이 입사마을에 처음 배달된 월요일자 종이신문을 1면부터 차근차근, 한장 한장 천천히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갑니다. 어르신들이 앉아서 신문을 보고 계신 경로당을 배경으로 지난여름 내내 마기꾼들과 함께 쌓은 추억이 이틀 지난 신문 8면에 전면으로 실려 있거든요. 가을 초입에서 한여름 추억이 소환됩니다.

    의령군 궁류면 입사마을 경로당에서 신상도씨 등 마을 주민들이 우편으로 배달된 경남신문을 읽고 있다.
    의령군 궁류면 입사마을 경로당에서 신상도씨 등 마을 주민들이 우편으로 배달된 경남신문을 읽고 있다.

    “이기 언제고? 이빨(이) 허여이(하얗게) 내놓고 뭣이 좋아서 이래 웃어샀노?”(윤기연 어르신)

    “좋으이 웃었지.”(빈달성 어르신)

    “살면서 언제 신문에 한번 나와보노. 신문 보고 날로(나를) 보고는 촌띠기(촌댁) 아닌 거 같다 카더라.”(윤기연 어르신)

    종이신문에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어르신들의 대화는 한참 더 이어집니다.

    “이래 좋은 일이 다 아들네들 덕분이다.”

    지난여름 함께한 경로당 이야기가 담긴 날짜 지난 종이신문의 온기가 가을 초입 경로당으로, 그 온기가 다시 ‘아들네들’인 마기꾼들에게 전해지는 순간입니다.

    지역신문의 생명력은 바로 여기에 있었군요.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사람들에게서 말이죠. 더 가까이에서 지역민들의 ‘삶의 온기’를 충실히 잘 담는다면 조금 느려도 괜찮습니다.


    ◇마을에 처음 배달된 생일 케이크, 마을 토론회로 이어지다= 이날 심부름꾼은 여느 때처럼 어르신을 왕복 80분 거리 읍내 병원과 약국에 모시고 다녀오고, 궁류시장 내 간판 없는 미용실에 태워드리고 파마가 다 되면 다시 모시러 가는 심부름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여느 때와 다른 ‘파티플래너’ 심부름을 이날 하기도 했는데요. 먼저 입사마을 최연소 주민인 신광재(13) 군의 둘도 없는 단짝 남예슬 양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전교생이 6명인 궁류초등학교로 깜짝 방문했습니다. 수업 중간 쉬는 시간을 이용해 학교에 들러 케이크를 전하고만 왔는데, 모두 맛있게 잘 나눠 먹었다는 후기를 마을에서 만난 광재 군으로부터 전해 듣고 절로 신바람이 나는군요. 초등학교 마지막 학기 건강하게 잘 보내기를 바란다는 인사가 조금 늦더라도 종이신문으로 잘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생일을 맞은 신상도씨가 부인 박혜정씨와 케이크를 자르며 웃고 있다.
    생일을 맞은 신상도씨가 부인 박혜정씨와 케이크를 자르며 웃고 있다.

    그 다음으론 이날의 하이라이트 파티가 펼쳐집니다. 울산에 살고 있어 찾아오기 힘든 두 아들을 대신해 신상도 어르신의 생일 잔치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열기로 한 겁니다. 역시 케익이 빠질 수 없죠. 마기꾼들과 마을 주민들을 위해 세상에 하나뿐인 케이크를 만들자고 마음 먹은 심부름꾼. 미리 주문제작할 만큼 ‘입사마을에 진심인 편’입니다.

    경남신문이 주문 제작한 케이크.
    경남신문이 주문 제작한 케이크.

    이날 마을 정자 ‘입사정’에서 오후 4시 30분부터 열린 생일잔치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최연소 주민 초등학교 6학년 광재 군부터 최고령 표종연(94) 어르신까지 참여한 명실상부 ‘마을잔치’가 됐습니다. 마을 주민 모두가 함께 박수치며 생일 노래를 부르고 축하하는가 하면, 이날 주인공 신상도 어르신이 쏜 탕수육과 통닭을 다 함께 나눠먹으며 즐거운 시간이 이어집니다. 모처럼 만에 많이 모인 주민들 덕분에 기분좋으신 윤기연 어르신은 평소 입에 잘 대지 않으시던 소주도 한잔 하시는군요.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노래를 흥얼거리는 어르신의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경남신문 제호가 담긴 1면 지면을 본뜬 바탕에 마기꾼들과 마을 어르신들이 처음 만난 날 사진을 옮겨놓은 케익을 본 빈달성 어르신은 “이기 누고? 내가? 신문에도 나오고, 테레비에도 나오고, 핸드폰에도 나오고, 케이크에도 나오네. 참말로 웃기라. 오래 살고 볼일이다”고 좌중을 폭소케 하시는군요.

    도영진 기자가 생일을 맞은 남예슬 양에게 케이크를 전달하고 있다.
    도영진 기자가 생일을 맞은 남예슬 양에게 케이크를 전달하고 있다.

    처음 열린 마을 생일잔치는 곧장 마을을 더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자는 주제의 ‘입사마을 토론회’로도 연결됩니다. 그동안 한데 모여 마을 공동의 일을 논의할 시간이 잘 없었는데, 오늘 같은 날이 토론하기 딱 좋은 날입니다. 마을 진입로 도로 확장 필요성, 저수지 건너편 논과 밭 경작을 위한 방안 등이 치열하게 논의됩니다.

    “참 기분 좋다. 아들네들 와가 이래 도와주이 얼마나 좋노.”

    “아들보다 훨씬 낫다.”

    과분한 칭찬을 받으며 주민들과 마기꾼들 모두 흥에 겨웠을 무렵. 신영도(74) 노인회장님은 지역이 있어야 지역신문이 있고, 지역신문이 있어야 지역이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지역신문의 존재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지역신문은 무엇이어야 하는가?’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그 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직접 들을 수 있어서 뜻깊었습니다. ‘소멸 위기’인 지역신문을 떠나지 않고 있는 종사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해 여기에 옮겨 적습니다. 분발을 촉구하면서요.

    “지방(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왜 지방지(지역지)를 봐야 하냐면 지방지를 봐야 어느 군, 어느 면에 어떤 소식이 있다 카더라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아닌교. 지방에 있으면서 조선이고 중앙이고 동아고 이런 서울신문들만 보면 맨날 저 우에(위에) 서울 소식만 나오지 여(여기) 소식은 나오나예 어데. 경남에 작은 군에 아주 작은 마을에 이런데 사람 사는 소식까지 잘 실어줘서 고맙고 계속 그래 해주이소. 그래야 계속 안 보겠나.”

    글= 도영진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지역소멸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영상은 유튜브 경남신문 채널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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