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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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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횡단보도- 황문규(경남도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

  • 기사입력 : 2022-09-22 19: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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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로교통법에서는 보행자가 도로를 횡단할 수 있도록 안전표지로 표시한 도로의 부분을 ‘횡단보도’라고 정의한다. 보행자가 길 건너편으로 안전하고 최단 거리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횡단보도는 보행자의 안전한 차도 횡단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에서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거나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는 그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할 것을 운전자에게 강제하는 이유다. 그런데 필자가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으면 그에 아랑곳없이 무섭게 달려오는 차량으로 인해 죽을까 겁이 날 정도이다.

    실제로 보행자 교통사고는 2021년 기준 전체 교통사고의 17.6%인 3만5665건이고, 사망자는 전체의 34.9%인 1018명에 달한다. 또한 (무단횡단을 포함한) 횡단 중 사고는 전체의 36.9%에 이른다. 가해운전자는 안전운전의무불이행(66.6%), 보행자보호의무위반(17.4%) 순으로 법규를 위반한다는 통계다. 이러한 통계는 횡단보도가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상호 신뢰하는 공간이 아니라 동상이몽의 공간임을 말해준다.

    사실 자동차로 인한 교통사고의 영역에서는 신뢰원칙을 전제로 처벌을 제한하고 있다. 내가 교통규칙을 준수하면 다른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교통규칙을 준수하리라는 것을 신뢰한다는 것이 신뢰원칙이다. 이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고속도로에서 무단횡단하는 보행자가 있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듯이,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차량이 일시정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 보행자 앞에서 차량이 당연히 일시정지할 것으로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주는 편익 못지않게 수반하는 위험도 크다. 그러나 그 편익을 외면한 채 살아가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신뢰원칙을 전제로 일정한 위험을 허용하게 하자는 일종의 타협책이 이른바 ‘허용된 위험’ 이론이다. 사람의 안전보다 교통을 더 중시하는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상기해야 할 이론이다. 횡단보도를 신뢰의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운전자는 엄히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황문규(경남도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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