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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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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추석명절은 잘 보내셨나요?- 성미경(마산대 치위생과 교수)

  • 기사입력 : 2022-09-12 19: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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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 열려있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게 느껴져 문을 닫는다. 절기는 참 소박하고 정직하다. 입추가 지났다고 덥고 길었던 여름 장마가 가고 가을바람이 분다. 하루하루 커가는 밤송이와 감을 보면서 추석이 다가오고 있나 생각만 했었는데, 개강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느새 다가온 유난히 실감 나지 않는 이른 추석이 왔다. 더불어 마음에 갈등이 일고 있다. 제사 음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나 스스로의 결정이다. 이미 기제사만 지내고 명절은 다례상만 차리기로 하고 가족 전체가 여행을 갔던 적도 있다. 코로나19가 계기가 돼 음식의 가지 수와 양이 줄기는 했지만 집에 있으면서 이후로도 여러 해 동안 여전한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관습을 깨면 어떤 일이 생길까?

    추석 명절 때 주고받는 덕담에 항상 ‘풍요롭고 즐거운 명절이 되길 바란다’는 인사가 있다. 결실의 계절 가을이라 먹을 것이 많고 풍성해 이런 말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음식이란 그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누군가의 헌신적인 노력 없이 풍성한 먹거리는 없다. 그래서 며느리들의 명절증후군이 생기고 노동 스트레스로 부부 간 다투거나 이혼율이 높아진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한다. 가족 간의 정이나 화목을 담보로 한 명절 문화가 오히려 반목을 초래한다면 진정한 명절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 아닐까 하며,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추석 명절을 보내기 위해서는 의식이나 인식의 변화, 배려, 간소화 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요즘은 추석 명절을 보내는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억지로라도 온 가족 모이는 자리가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명절 전에 벌초하러 갈 때 준비한 음식으로 인사를 대신하거나 미리 산소를 가고, 명절에는 각자의 취향대로 즐기는 문화가 늘어나고 있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에서 이런 변화를 반영한 것일까? 차례상을 간소화한 ‘차례상 표준화 방안’을 발표했다. 기본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 김치, 과일, 술 등 6가지였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고된 노동이 필요한 전이나 튀김은 굳이 제사상에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음식의 가짓수에 있지 않으니 많이 차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무척 공감되는 상차림이었다.

    관습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며 집집마다 조금씩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일 뿐 절대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절대적인 노력으로 이어가는 전통보다는 가족이 함께 즐거운 명절을 위해서는 노동도 함께하는 나누어 갈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분명 행복한 명절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변화에는 불편함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어린 시절 어머님이 준비하던 명절 음식을 흐뭇하게 바라보거나 즐겁게 심부름을 하다가도,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나면 동구 밖에 뛰어나가 흙먼지를 날리며 지나가는 버스에서 내가 기다리던 언니가 내리는지를 눈이 빠져라 기다렸다. 그때는 언니가 사 올 새 옷, 새 신발을 기대하며 행복한 기다림을 이어가던 명절이었다. 잘살지 못했던 시절에는 명절에라도 많은 음식을 해서 맘껏 먹고 새 옷을 사는 사치를 핑계 삼고자 했던 것이었다. 지금은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젊었던 아버지, 어머니, 청춘이었던 언니, 오빠 다시 그들을 볼 수 있다면 가난해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2022년 9월 10일 추석에 뜨는 보름달은 최근 100년 동안 나타난 한가위 보름달 중에 가장 완벽한 형태의 보름달이라고 한다. 휘영청 밝게 뜬 보름달을 보며 소원도 빌고 카메라에 담아도 본다. 그리운 사람들을 추억하며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았다. 내년에는 조금은 결이 다른 추석 명절을 보내고자 빌어도 보며.

    성미경(마산대 치위생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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