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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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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51) 합천 해인사 계곡

물길과 사람의 길이 스쳐간다

  • 기사입력 : 2022-09-06 20: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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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이 길을 묻고 묻힌 길 위에 다른 길을 입히고


    저것은, 점 점 늘어나면서 질겨졌겠구나


    수많은 발자국을 기억하면서 저것은,

    점점 늙어갔겠구나 늙어가면서


    스쳐간 것들은 때론 잊혀지고 입혀지고 점점 감추어졌겠구나


    때로는 참을 수 없는 통증이 검은 상흔을 새기고

    툭, 툭, 허물어지기도 했겠지만

    몇 번의 설렘과 잠깐의 안정과 긴 터널을 빠져나와


    눈부신 햇살과 마주했을 때

    그리고 위태로운 강을 건너갔을 때


    저것은, 산 아니면 바다 끝에 제 이름을 묻었겠지


    다시는,

    어느 발길 아래 함부로 짓밟혀 표정을 잃은 밑바닥을 반복하지 않겠노라고

    쏟아진 새소리와 부스러지는 나뭇잎을 그대로 두겠노라고

    지나간 노루의 온기와 다람쥐의 입꼬리를 번갈아가며 꺼내보겠노라고


    ☞ 해인사 계곡에 다리가 놓였다. 물길과 사람의 길이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억지로 만든 길은 더 깊은 숲 속으로 가고 가만히 놓아둔 물길은 계속해서 더 낮은 곳으로 바다로 간다. 사람의 발길이 지나간 길만이 저토록 튼튼한데. 들짐승 산짐승이 아무리 많이 다녀도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 길을 사람은 긴 상처의 흔적처럼 선명하게 드러낸다. 풀 한 포기도 날 수 없도록 꾹 꾹 눌러 다져놓은 질기고 단단하고 오래된 길. 고요와 적막으로 둘러싸인 초록의 성전, 그러나 제 나름의 질서대로 살아가고 있는 곳에 사람이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은 불협화음이다. 자연은 가만히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시·글= 이기영 시인, 사진= 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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