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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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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모기장 동물원- 정희숙

  • 기사입력 : 2022-09-01 09:58:43
  •   

  • 모기장에서

    웃옷 벗고 앉아 있는데


    바깥에 찰싹 달라붙은

    모기 한 마리


    내가 발가벗은

    동물원 원숭인 줄 아나


    빤히 들여다보며

    앵앵~


    기분 어때?

    덥지?

    갑갑하면 밖으로 나올래?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소중하지만, 요놈 모기만큼은 사랑하기 어렵다. 모기에 대한 고충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아 선조들도 모기에 대한 미움을 시로 토로하곤 했다. 정약용은 증문(憎蚊, 모기를 미워하다)이란 시에서, ‘호랑이가 으르렁대도 코를 골며 잘 수 있지만, 모깃소리 웽 하고 들려오면 기가 질려 간담이 서늘해진다’ 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동시에서도 모기는, 모기장 안으로 피한 사람을 ‘동물원 원숭이’ 취급한다. ‘빤히 들여다보며 앵앵거리는’ 모기는 담대하고 뻔뻔스럽다. 거기다가, ‘덥지? 갑갑하면 밖으로 나올래?’ 라고 놀리며 협박까지 한다. 모기와 대치 상태인 화자의 모습이 귀엽고, 얄미운 모기를 콕 쥐어박고 싶어지는 동시이다.

    그래도 모기장 안에 있으니 다행이다. 쥐라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그야말로 생존력 우주최강의 모기와 맞서서는 승산이 별로 없다. 대차게 때려잡으려 해봐도 인간의 안구 회전속도로는 모기의 순간 선회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 는 옛말이 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니 모기가 사라질 것이라 여유 부리는 편이, 모기보다 나은 사람의 처세인 듯하다. 오늘 밤 모기장에 달라붙은 모기 한 마리를 자세히 보자. ‘갑갑하면 밖으로 나올래?’하고 호기부리는 모기의 입이 살짝 삐뚤어졌을 것이다.

    -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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