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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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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소비사회와 기호가치-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 기사입력 : 2022-08-31 20: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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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를 분석했던 칼 마르크스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강조했다. 사용가치란 어떤 것을 사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말한다. 가방은 물건을 담고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고, 칼은 음식의 재료를 다듬거나 짐승을 사냥할 수 있는 도구다. 이처럼 한 사물이 가진 유용성이 사용가치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용가치는 인간의 노동에 의해서 창조된다.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이용해 유용한 도구나 상품을 제작했다는 것이다.

    교환가치는 만들어진 물건들이 교환되는 비율을 말한다. 화폐가 출현하면서 물건에는 가격이 매겨지는데 가격은 해당 물건이 다른 물건과 교환되는 비율을 나타낸다. 이것을 중계하는 것이 화폐다. 마르크스는 “사용가치는 그 부의 사회적 형태가 무엇이든 간에 모든 부의 실체를 이룬다”고 했다. 사용가치야말로 상품의 본질이라는 의미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생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생산이 아닌 소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욕망을 가졌다. 즐기고 누리고 싶은 마음이 욕망이다. 현대의 노동자는 상품 구매를 통해 고객의 지위를 획득한다. 생산자에서 소비자의 지위로 넘어간 것이다. 이때 노동자는 쉽게 자본에 포획당한다. 21세기 노동자들은 버버리 가방을 들고, 포르쉐에서 내려, 백화점 명품 쇼핑에 나서는 것을 꿈꾸며 노동력을 소모하고 있다.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를 ‘소비사회’라고 말한다. 생산이 아닌 소비가 중심이 된 시대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살았다면 그것이 내가 말하는 확대재생산이라고 했겠지만, 보드리야르의 생각은 이전의 자본주의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소비사회라고 본다. 보드리야르가 현대를 소비사회라고 규정한 이유는 생산이 아닌 소비가 경제의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이제 소비가 생산을 창출한다. 친구가 멋진 차를 타고 나타나면 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소비를 통한 과시는 타인을 자극하고 다시 소비를 불러오는 것이다. 이런 사회는 낭비조차 남들이 부러워하는 미덕이 된다.

    소비사회에서는 사용가치보다 기호가치가 중요하다.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해서 산다. 유용성보다 심리적 만족도가 강조된다. 이것을 보드리야르는 기호가치라고 부른다. 신형 스마트폰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비싸고 좋은 것’이라는 이미지를 가졌다. 성공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지위에 있는지를 알려준다. 상품이 사회적 신분을 보여주는 기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때 기호가치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차이와 개성에 대한 강조이다. 길을 가다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기분이 안 좋아진다. 남들에게 평범하다는 말을 들으면 자존심 상한다. 우리는 남들과 같음, 개성 부족이 수치와 관련된 시대를 살고 있다. 작게는 개성의 강조지만, 크게 보면 명품소비로 신분적 우위 혹은 차이 나는 클라스를 보여주라는 은밀한 유혹과 관련된다. 구찌, 애플, 포르쉐 등 수많은 브랜드들이 기호가치를 활용한 전략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감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토리가 중요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논의의 중심에 소비사회, 기호가치가 있다. 자본이 억눌려있던 감성을 끌어내 소비를 자극해 자신을 증대시키고 있다는 것이 소비사회에 숨겨진 진실이다. 보드리야르의 논리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인간은 생존과 편리를 위해 물건을 사용한다. 교환을 통해 유용성을 증대시킨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제품을 소비하며 자신을 과시한다. 이 모든 것이 인간 욕망의 모습이다. 보드리야르의 기호가치 논리가 날카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시대의 근저에 흐르는 인간 욕망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인간을 탐색하는 학문이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면 시대가 보인다. 문제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자본의 유혹을 인문학이 통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적은 내 안에 있다.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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