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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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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약속의 무게- 정해룡(시인·전 통영예총회장)

  • 기사입력 : 2022-08-24 20: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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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속이 얼마나 무겁고 중요한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숱한 일화가 전해온다.

    그중에서 성경에 나오는 헤로데가 의붓딸 살로메와 한 약속 때문에 세례자 요한을 죽인 것이 그 압권이다.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는 요한을 죽이려 했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했다.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고 마태복음서(14장 3절~10장)는 기록해 놓았다.

    또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보면, 태양의 신 아폴로의 아들 파에톤은 친구들에게 자기의 아버지가 아폴로라고 자랑하다가 왕따를 당하자 어머니 클뤼메네에게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내 아들아, 네 아버지는 우주를 다스리시는 저 태양신이다. 만일 네 아버지의 거처를 알려거든 해 뜨는 동쪽으로 가서 그분에게 직접 물어보아라!”라고 하자 파에톤은 아버지를 찾아 해뜨는 곳에서 드디어 아버지를 만나 감격의 해후를 했다. 이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네 소원을 다 들어줄 테니 무엇이든 말하라”라고 했다. 파에톤은 아버지의 아들임을 증명하고자 “해를 모는 아버지의 마차를 몰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그 마차를 몰게 되면 사랑하는 아들이 죽게 되므로 아버지는 강하게 거절했으나 약속을 지키라는 아들의 고집에 결국 마차를 내주었고 아들은 제우스의 번개를 맞아 죽었다. 이로 인해 사막과 흑인이 생겨났다고 하며, 이미 한 약속의 무게가 얼마만큼 큰 것인지를 깨우쳐 주는 신화다.

    또 있다. 미생지신(尾生之信)으로 알려진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미생(尾生)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신의가 있는 사람으로 어떤 경우에도 약속한 일은 꼭 지키려고 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약속 시간에 다리 밑으로 갔지만 여인은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가도 그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점점 불어 올랐다. 시간이 갈수록 무릎을 적시고, 허리, 가슴, 이윽고 목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미생은 약속한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부여잡은 채 물살에 휩쓸려 가지 않으려 버텼으나 급격히 불어난 물에 어쩔 수 없이 떠내려가 죽고 말았다 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었지만 이것 역시 약속의 중요성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약속을 잘 지킨, 근래에 보기 드문 인물이 있다.

    윤희숙 전 국회의원이다. 2020년 7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임대차 3법 비판 연설로 일약 스타 정치인이 됐던 그는 부친의 세종시 땅 투기 의혹을 받자 본인의 연루 의혹과 투기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의원직 사퇴 선언과 땅을 매각해 생긴 이익은 사회환원을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모두 지켰다.

    반대로 이재명 국회의원은 지난 대선 기간 중 청중들 앞에서 “박근혜를 존경한다”고 했다가 다른 지역에 가서는 “박근혜를 존경한다고 하니까 진짜로 존경하는 줄로 알더라”라고 했다.

    미더운 말은 번지르르하지 않고(信言不美), 번지르르 한 말은 미덥지 않다(美言不信)는 노자의 말을 이재명 의원은 가슴에 새겨 정치를 하기 이전에 먼저 약속을 지킬 일이다.

    정해룡(시인·전 통영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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