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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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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어느 베이비부머의 퇴장- 이재달(MBC경남 국장)

  • 기사입력 : 2022-08-10 21: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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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6쿠데타가 발발한 이듬해인 1962년, K는 지리산 자락의 한 오지 마을에서 태어났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막내쯤 되는 셈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6·25 전쟁이 끝난 1955년부터 가족계획 정책이 시행된 1963년까지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다. 당시 다들 힘들었던 시대에 성장한 이들은 직장에 들어가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끈 당당한 주역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자녀 세대의 취업과 결혼이 늦어지면서 오랫동안 자녀 지원 부담을 떠안고 있다. K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럴듯한 회사에 취업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가족을 부양하고 다달이 부모님 용돈까지 챙겨드렸다. 그런 생활이 삼십 몇 년 간, 어느새 정년 퇴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부모님과 자녀를 지원해야 할 처지고, 모아둔 목돈은 알량하다. K는 준비되지 않은 정년 이후의 삶을 맞으며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같은 연배의 베이비부머가 느끼는 심정이 대개 이럴 것이다.

    청춘을 보낸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맞자면 대부분 막막하다. 다행히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구석구석 들어갈 돈을 감당하기 벅차다. 더욱이 몸과 마음은 여전히 젊어서 일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적당한 수입이 보장된 인생 2막의 일터가 있는지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하지만 세상은 마음 같지 않아서 그런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급한 마음에 가진 돈을 몽땅 투자해 사업을 벌여 본다. 잘 되면 다행이겠지만, 그럴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쪽박을 차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면서 하루하루가 다르게 늙어간다.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4년에 고령 인구가 전체의 8.7%로 고령화 사회가 됐으며, 2019년에는 고령 사회의 문턱도 넘었다. 통계청의 ‘2020~2040 인구 전망’ 자료에 따르면 2025년에는 고령 인구가 21%로 초고령 사회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나아가 2040년에는 고령 인구가 35.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나라다.

    이에 따라 각종 노인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노인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고독감이 심리적인 문제라면 노인들이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문제는 경제적 빈곤이다. 경제적 빈곤은 삶의 질과 직결되기에 가장 중요한 노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노인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맞춤식 일자리를 창출하고, 빈곤 노인을 지원하는 데 사회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고령 사회에서 노인이 불행하면 그 사회 전체가 불행하다.

    멀지 않아 100세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100세 시대의 아이콘 김형석 교수는 “인생은 60부터, 인생의 황금기는 60~75세”를 외치신다. 인생을 교육-일-은퇴라는 3단계로 단순히 설계하는 발상도 바꿔야 한다. 조직론의 권위자 린다 그래튼(Lynda Gratton)은 공저 ‘초예측’에서 주택, 현금 같은 유형 자산보다는 무형자산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형자산에는 건강, 동료애, 변화 대응력이 해당한다. 특히 평생 자신을 변형시킬 수 있는 변형자산을 무형자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꼽는다. 노년이 되면 일반적으로 몸과 정신이 굳어지고 유연성이 떨어진다. 주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적응하기 어렵다. 이런 판국에 자신을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겠지만, 안개가 자욱한 노년의 길에 조금이라도 즐겁게 인생 2막을 보내려면 그렇게 안 하면 안 된다.

    K는 오늘도 홀로 산을 오른다. 날이 갈수록 발걸음이 점차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가쁜 숨을 내쉬며 그간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힘들었어도 땀방울이 고맙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재달(MBC경남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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