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2년 10월 01일 (토)
전체메뉴

[지역소멸 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4) 칠석날 비가 내린다

입추 앞둔 오지마을, 한여름 ‘가을 채비’

  • 기사입력 : 2022-08-07 21:53:45
  •   
  •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취재팀 ‘마기꾼들(마을기록꾼들)’이 의령군 궁류면 입사마을을 찾은 지난 4일.

    이날은 음력 7월 7일, 견우와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의 도움으로 일 년에 한번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칠월칠석(七夕)이었는데요. 이날 낮 최고기온은 35℃까지 올랐고 의령에는 폭염경보가 내려질 만큼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추석을 한 달여 앞둔 오지마을의 한여름 풍경은 어땠을까요?

    어느덧 ‘개업’ 4주 차를 맞은 마기꾼들이 입사마을의 여름날 하루를 독자들에게 보여드립니다.


    ◇할머니와 감나무

    칠월칠석이자 24절기 중 열세 번째 절기인 입추(立秋)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이날 마기꾼들이 마을에 도착한 건 오전 8시 40분 무렵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마을 정자 건너 한집을 바라봅니다. 이 마을 최고령이신 표종연(94) 할머니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마당 안 감나무 밑 ‘당신만의 의자’에 앉아 정자를 지긋이 보고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표종연(94)씨가 의령군 입사마을의 집 앞 단감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있다.
    표종연(94)씨가 의령군 입사마을의 집 앞 단감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있다.

    할머니께 일주일 동안 잘 지내셨는지 안부를 여쭙자 의자 맞은편 벤치를 손짓으로 권하십니다. 1929년생이신 할머니는 의령군 유곡면 마장리가 친정이신데요, 광복과 한국전쟁 발발 사이였던 열여덟 살에 결혼하면서 입사마을로 들어와 76년 동안 이 마을에서만 지내셨습니다. 맏아들 신영도(74)·며느리 박계수(70) 씨와 함께 사시는 할머니는 아침 7시에 일어나 식사하신 뒤 마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감나무 그늘 밑 이 의자에 지긋하게 앉아 계신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십니다.

    “내 시집오고 그해 심었지….”

    말수 적고 수줍음 많으신 할머니를 닮은 감나무 한 그루가 할머니께 그늘을 건네고 함께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깨 찌고 홍고추 따기 바쁜 오전… 가을 길목의 입사마을

    오전 9시. 마을 정자 맞은편 오르막길 중턱 텃밭에는 윤기연(80) 어르신이 앉아서 가쁜 숨을 고르고 계십니다.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될 낮 시간 이전에 참깨를 베던 중 잠시 휴식 중이신 겁니다. 자식들 타지로 다 보내고 혼자 시골집에 사시는 어르신은 당신의 농삿일 쳐 내기도 버거우실 텐데도 집을 오래 비우고 있는 친척집 깨밭이 걱정이셨습니다. 새들이 다 따먹고 있어서 그냥 넘기시지 못하셨군요. 어르신은 앞집이고, 옆집이고 마을사람 누구라도 일손 부족할 때면 늘 먼저 나서시는 너른 품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도영진 기자가 의령군 궁유면 입사마을에서 윤기연(80)씨의 깨 수확을 돕고 있다.
    도영진 기자가 의령군 궁유면 입사마을에서 윤기연(80)씨의 깨 수확을 돕고 있다.

    참깨는 아래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차차 위쪽으로 꽃이 올라갑니다. 꼬투리도 아래부터 열리기 시작해 차차 위쪽으로 올라가고요. 꽃이 모두 지고 꼬투리가 다 만들어진 것 중 잎이 20%가량 노르스름 변하고 마른 꼬투리가 두 마디 정도 보이면 이때부터 수시로 베고 말리기를 반복한 뒤 마지막에는 ‘탈~탈’ 텁니다. 이런 과정을 ‘깨를 찌다’라고 표현하는데, 오늘은 그 첫 번째 과정인 셈입니다. 윤기연 어르신을 잠시 쉬게 해드리기로 하고 심부름꾼인 제가 낫을 들고 깨를 베기 시작합니다.

    “왼손으로 대를 잡고 낫을 울로(위로) 쳐올려서 베고…. 손 베일라 낫질 조심해야 된다.”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릴 적 할머니 따라다니며 깨 쪄본 솜씨를 드디어 이날 뽐냅니다. 1) 꼬투리가 벌어지지 않게 왼손으로 야무지게 잡고 2) 잘 드는 낫으로 과감히 베고 3) 비닐을 깔고 차곡차곡 모아 4) 수레에 실어 윤기연 어르신 집 창고 앞에 널어놓습니다. 소매로 비 오듯 흐르는 땀을 훔치며 40분간 보람찬 노동을 마쳤습니다. 농촌 일손이 부족한 인구소멸지역에서 심부름센터를 연 건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심부름을 맡긴 단골고객의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이어서 깨밭 바로 아래 이미옥(57) 씨 집으로 시선이 향합니다. 여러 작물을 키우는 이미옥 씨네. 마을 정자 아래 도로 건너편에는 고추 250포기를 심어놓았는데요. 의령에서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이미옥 씨가 입사마을 집에서 생활하고, 창원에서 직장 생활 중인 남편 신상동(60) 씨는 주말에 이곳으로 와 농사일을 합니다. ‘친환경 무농약’인 만큼 손이 많이 가는 건 물론입니다.

    부인 이미옥씨가 발묵을 다쳐 휴가를 낸 남편 신상동(60)씨가 입사마을에서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부인 이미옥씨가 발묵을 다쳐 휴가를 낸 남편 신상동(60)씨가 입사마을에서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이아름 인턴PD가 의령군 입사마을에서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이아름 인턴PD가 의령군 입사마을에서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도영진 기자 입사마을에서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도영진 기자 입사마을에서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모든 농사는 때가 있는 법.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맘때가 홍고추 수확 적기인데요. 그런데 이미옥 씨가 며칠 전 고추 따러 밭으로 가는 길에 넘어져 발목 인대를 크게 다쳤습니다. 발목이 심하게 붓고 걷기도 힘들어 신상동 씨는 휴가를 내고 간호와 농사일을 척척 하고 있습니다.

    “에이, 어디 그럴 수 있나요.”

    뙤약볕에 일 시키는 게 미안한 농부와 진짜 심부름꾼이 되고픈 마기꾼들 사이 신경전(?) 끝에 저희는 홍고추 밭에 눌러앉았습니다. 홍고추는 그때그때 완전히 착색된 상태로 따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군요. 완전히 색이 들지 않았을 때 건조하면 ‘희아리(조금 상한 채로 말라서 군데군데 흰 빛깔의 얼룩이 진 고추)’가 생기기도 하고요. 1시간 남짓 지났을까요. 어느새 해가 머리 위로 올라왔습니다. 쨍한 햇볕에 살이 따가울 정도지만 색이 선명하고 윤이 나는 홍고추 자태에 반해 더위도 잊으며 일했습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두 계절 동안 씨 뿌리고, 모종 심고, 거름 주고, 김매고, 애정 가지고 정성껏 가꾸는 과정을 하나하나 성실히 실천해 나간 농부 앞에 자연은 큰 선물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취재진이 배가 익어가고 있는 경로당 앞을 지나가고 있다.
    취재진이 배가 익어가고 있는 경로당 앞을 지나가고 있다.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처럼

    아침 일찍부터 분주히 일을 시작한 마을 어르신들은 낮 시간 폭염을 피해 경로당으로 모이십니다. 마기꾼들이 사 온 ‘하드(아이스크림)’, 냉장고에서 갓 꺼낸 오이무침, 오랜만에 마을을 들른 주민이 사 온 궁류 찰비 막걸리로 목도 축이는 시간입니다. 표종연 할머니, 빈달성 어르신, 박계수 어르신, 김덕호(66) 마을반장님, 신상곤(62) 어르신의 입담과 ‘농사 철학’에 마기꾼들도 푹 빠져듭니다. “이렇게 맛있단 말이에요?” 농사에 진심인 신상곤 어르신이 직접 재배한 복숭아 맛에 감탄하기도 하고 말이죠. 재종간인 신상동·신상곤 어르신, 김승권 사진꾼은 자리를 이미옥 씨네 집으로 옮겨 이날 딴 고추도 함께 널고 가지요리에 소주 한 잔을 더 곁들이며 우애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도 기자가 어르신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도 기자가 어르신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옥씨가 안주로 준비한 가지조림, 알감자 조림, 노각무침, 단호박찜.
    이미옥씨가 안주로 준비한 가지조림, 알감자 조림, 노각무침, 단호박찜.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의 입사마을 이제 곧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이슬이 진하게 내릴 겁니다. 입사마을 주민들의 가을 채비는 더더욱 바빠지겠지요. 5월이 모내기와 보리 수확으로 매우 바쁜 달이란 뜻에서 나온 ‘발등에 오줌싼다’는 말이 있는데요. 반대로 음력 7월은 김매기도 끝나가고 농촌도 한가해지기 시작한다는 뜻에서 ‘어정 7월 건들 8월’이란 말도 있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잠시 숨을 고르는 그 시기인 겁니다.

    막걸리 2통을 다 비워갈 무렵. 입사마을에는 거짓말처럼 한바탕 비가 쏟아집니다. 잽싸게 일어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를 뚫고 각자 집으로 달려갑니다. 널어놓은 빨래와 참깨, 고추를 안으로 거둬들여야 하거든요.

    칠석은 으레 비가 오는 날로 되어 있습니다. 비가 내리면 견우직녀가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알고 농사에 좋을 것이라 여겼다고 하는군요.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가 입사마을을 흠뻑 적셨습니다.

    글= 도영진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지역소멸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영상은 유튜브 경남신문 채널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 관련기사
  • 도영진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