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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 14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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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36) 학구유막(學求愈邈)

- 학문은 구할수록 더욱 아득해지는구나

  • 기사입력 : 2022-07-05 08: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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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5일 전에 조카에게 자신의 유언을 적게 했다. 그 한 조항에 자신이 지은 자신의 묘소에 새길 명(銘)을 쓰라고 한 내용이 있다.

    선생이 스스로 지은 명 가운데는 “학문은 구해도 더욱 아득해지고〈學求愈邈〉, 벼슬은 사양해도 더욱 얽힌다〈爵辭愈〉”라는 구절이 있다.

    필자는 젊을 때 이 구절을 처음 보고 “그렇게 학문이 깊고 넓은 대학자께서 겸손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겠지”라고 생각했다. 그 뒤 유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가 돌아가시기 1년 전에 자화상에 쓴 글은 “예법을 다루는 곳에서 차분하게 행동하고〈從容乎禮法之場〉, 인의의 창고에 푹 젖어들어야지〈沈潛乎仁義之府〉. 이런 일에 내가 뜻은 있었으나 힘이 허락하지 않았다〈是予蓋將有意焉, 而力莫能與也〉”였다.

    주자가 평생 예법과 인의를 연구해 시원하게 통해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돌아가시기 1년 전에 고백했다. 필자는 한문학 대가 은사(恩師)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을 고등학교 때부터 하늘처럼 생각해 “어떻게 하면 저 어른 가까이에서 자주 뵈옵고 배울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 뒤 서울에서 대학원 다니며 자주 뵙고 배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크게 실망해 문하를 떠날까 하는 생각까지 한 적도 있었다. 대학원 다니면서 모르는 것, 의심 나는 것, 해석이 안 되는 문장 등을 적어 모아 댁으로 찾아뵙고 여쭈어 보면 답변하는 것이 열에 한둘이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세상에서 한문 하면 연민, 연민하지만 알고 보니 사실 별 실력이 없구나!”라고까지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히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한문 문리(文理)가 어지간히 난 대학원생이 가장 큰 한문사전인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 등을 다 찾아보고 나서 질문하는데 ‘천하의 연민’이라 할지라도 다 대답할 수 있겠는가? 워낙 많은 한문 책 내용을 어떻게 다 기억하겠는가?

    나이 70을 넘어 보니 퇴계선생이나 주자의 말씀이 자신의 학문적 부족을 안타까워하는 실제상황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이 평생 공부한다고 해도 얼마 못 한다. 책 1만권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의 다 거짓말이다. 30년 동안 매일 1권씩 읽어야 1만권을 읽을 수 있다. 어떤 학자를 ‘사서삼경(四書三經)에 통달했다’고 칭찬하는데, 사서삼경에 통달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퇴계선생이나 주자가 자신의 부족한 면을 공개했다고 해서 그 위상이 낮아지는 것이 전혀 아니다. 필자는 지금도 은사 연민 선생을 하늘처럼 우러러본다.

    주변에 “내가 한국에서 최고다”라고 하는 사람이 없지 않은데, 이런 사람들은 대개 학문이나 인격이 형편없는 사람이다. 참된 공부를 안 해 봤으니 학문이 얼마나 넓고 깊은 줄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學: 배울 학. *求: 구할 구. *愈: 더욱 유, 나을 유. *邈: 아득할 막.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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