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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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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사과의 정석-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 기사입력 : 2022-06-28 20: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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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음악인 유희열이 표절 논란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다른 지적들이 있긴 했지만, 사과문의 내용은 매우 모범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구차한 변명 없이 책임을 인정해 정중히 사과하면서, 깊은 반성과 함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가 잘 언급돼 있다. 그 덕분인지 원저작자는 아주 관대하게 응답하며 격려까지 얹어주었고, 이로써 그 논란은 일단락된 듯하다.

    “책상을 탁 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무신사가 양말 광고에 박종철을 고문치사한 공안 경찰의 발언을 패러디해 썼던 것이다. 비난과 항의가 거셌다. 무신사는 지체 없이 모든 잘못을 시인하며 몇 차례 사과하고, 담당자 징계, 재발 방지 대책, 박종철기념사업회에 후원 의사 등도 연이어 발표했다. 논란은 곧 수그러들었고 회사에 대한 신뢰는 그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이들처럼 적절한 사과는 위기를 극적으로 완화시키고 그것을 오히려 기회로 반전시킨다.

    그러나 변명, 지체 등으로 소극적 혹은 부적절하게 대처하면 상황은 나빠진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누구나 뜻하지 않는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잘못을 속히 시인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기는 쉽지 않다. 자존심이나 피해 보상 부담이 관련되기도 하고, 피해자의 입장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거나 죄의식의 인식 차이로 인해 그럴 수 있다. 그러다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사과의 흉내만 내기도 한다. 그런 억지 사과나 부적절한 대처가 작은 해프닝을 큰 위기로 키우게 된다.

    그래서 사과에는 정석이 있다. 원칙에 따라 제대로 사과하면, 상대의 너그러운 용서를 이끌어내고 기업 이미지를 지키거나 더 높일 수 있다. 그런 좋은 사과에는 반드시 포함되는 필수 구성 요소들이 있다. 다섯 개의 ‘R’로 정리된다. 유감 표명(Regret), 책임 인정(Responsibility), 보상 약속(Restitution), 반성(Repenting), 용서 요청(Requesting forgiveness)이다.

    ‘유감 표명’에는, ‘나의 언행이 당신에게 정신적 아픔을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와 같이, 주체, 행위, 상대의 피해 내용 및 사과의 뜻이 명료히 표시된다. ‘책임 인정’은 책임의 소재를 명백히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 것이며, 모든 책임을 감수하겠다’와 같이 표현하면 된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는 모든 노력을 다해 보상하겠다’와 같은 엄중한 ‘보상 약속’과, 진지한 후회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반성 의지’를 밝히면서, 피해자에게 정중히 ‘용서’를 구하는 완벽한 사과문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있다. 진정성이다. 사과 표현에 변명 등 사족을 덧붙이거나, 머뭇거리다 때를 놓치거나, 직접 나서지 않고 간접적으로 발표하는 것 등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임블리의 곰팡이 호박즙 사건,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 때의 대처가 그러했고, 그래서 당시 그 회사들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었다. 상투적인 조건부 사과도 부적절하다. “나로 인해 동료와 고객이 한 명이라도 발길을 돌린다면 어떤 것도 정당성을 잃는다. 저의 자유로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제 부족함입니다.” 이 말은 신세계 부회장이 한동안 멸공 놀이로 논란이 증폭되자 마지못해 발표한 메시지다. 조건 ‘~하다면’은 자신은 별 잘못이 없는데 사람들이 너무 편협하거나 관용이 부족해서 자신을 비난한다는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상황의 책임을 은근히 타인에게 전가해 희석시키면서 사과의 흉내를 낸 것에 불과하다.

    진정성을 무장한 사과가 좋은 용서를 부른다. 좋은 용서는 가해자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면서, 피해자도 그 피해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다. 그러니 이왕 사과를 하겠다면 제대로 하라. 그래야만 비로소 모두의 영혼이 함께 자유로워질 수 있다.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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