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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7월 0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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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하나 없는 ‘잊혀진 전투’ 적극 재조명해야

[6·25전쟁 72주년 기획] 마산방어전투 의미·과제

  • 기사입력 : 2022-06-23 21: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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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전쟁 당시 마산을 지키고 뺏기 위해 국군과 미군 1000여명, 북한군 4000여명 등 무려 5000여명이 전사한 참혹한 ‘마산방어전투’. 북한군에 대부분의 국토를 빼앗기고 마산이 무너지면 부산마저 위태로운 상황에서 방어전투는 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 있는 ‘막느냐 무너지느냐’의 중요한 전투였다. 만약 패배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전투지만 이를 기억해줄 기념관 하나 없어 국가와 국민들은 잊어 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지난해 마산방어전투기념사업회가 출범하고 국회에서 토론회가 개최되는 등 마산방어전투 재조명과 전쟁기념관 건립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홍남표 창원시장 당선인도 전쟁기념관 건립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건립 추진이 빨라질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쟁 승패 좌우한 중요한 전투
    45일간 고지 주인 19번 뒤바뀌며
    5000여명 전사한 치열했던 전투
    전략적 요충지 마산 지키고
    임시수도 부산 가던 인민군 막아

    ‘죽음으로 지킨 전투’ 잊지 말아야
    작년 기념사업회 창립 생존자 파악
    학·정계 ‘전쟁기념관 건립’ 촉구
    시민 “추모공간 마련해 후대 알려야”
    홍남표 당선인 관심 표명 ‘추진 탄력’

    함안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는 미24연대./마산방어전투 기념사업회/
    함안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는 미24연대./마산방어전투 기념사업회/
    1950년 8월 방어선에 배치된 미군전차. 철로는 함안-마산 간 노선./마산방어전투 기념사업회/
    1950년 8월 방어선에 배치된 미군전차. 철로는 함안-마산 간 노선./마산방어전투 기념사업회/

    ◇죽음으로 지킨 전투= 1950년 8월 1일 북한군은 남침 36일 만에 진주를 점령한 데 이어 마산 현동검문소에 집결했다. 중국 국공내전에 참전해 전쟁 경험이 풍부한 조선족들로 구성된 북한군 6사단 7000여명은 함안·진동 고산지대를 확보 후 마산 점령을 노리고 있었다. 당시 이 일대를 주둔하고 있던 국군은 1000여명에 불과했다. 미 8군 사령관인 워커 중장은 급히 경북 상주에 주둔 중인 미 25보병사단을 250㎞ 넘는 마산으로 단 2일 만에 이동시켰다. 이에 맞춰 진주에서 후퇴한 미 24사단도 창녕에 낙동강 방어선 진지를 구축했다. 마산을 점령하려는 북한과 사수하려는 국군과 미군은 8월 1일부터 9월 14일까지 45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특히 당시 마산방어전투의 요충지였던 해발 739m 높이의 서북산은 고지의 주인이 19번이나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1000여명의 아군이 전사했다. 서북산 정상은 수없는 미군 함포 사격과 공군기의 네이팜탄으로 인해 나무가 사라지고 정상 높이가 낮아져 미군은 이 산을 ‘늙은 중머리 산’, ‘네이팜산 언덕’이라고 불렀다.

    만일 방어전투에서 패배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을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바뀌기 전까지 대한민국은 절박한 위기였다. 인민군 6사단장 방호산 소장이 “마산을 점령하면 적의 숨통을 조르는 것이다”고 말했을 정도로 당시 마산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마산과 당시 임시수도인 부산까지는 직선거리로 40~50㎞에 불과했다. 마산방어전투에서 패배했다면 부산이 위험했고,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도 힘들어졌을 수 있었다.

    결국 마산방어전투에서 한미동맹군의 승리로 북한군의 부산 점령을 막을 수 있었고, 국군과 UN군이 재정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방어전투 승리로 9월 16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반전의 기회를 가져왔다.

    1950년 여름 미25사단 부상병이 후송되기 전 응급 치료를 받고 있다./마산방어전투 기념사업회/
    1950년 여름 미25사단 부상병이 후송되기 전 응급 치료를 받고 있다./마산방어전투 기념사업회/
    마산진동리전투에서 승리한 해병대 부대원들의 모습./마산방어전투 기념사업회/
    마산진동리전투에서 승리한 해병대 부대원들의 모습./마산방어전투 기념사업회/

    ◇잊혀진 전투…기념관 하나 없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고 한다. 6·25전쟁사의 중요한 전투지만 마산방어전투를 기억할 전쟁기념관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육군사관학교에서 발간한 ‘6·25전쟁 60대 전투’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관련 시설은 해병대진동리지구 전첩비, 서북산 전적비뿐이다. 달성에서 진해까지의 낙동강 방어선은 미군 부대가 주력이었기에 그동안 관련 전투들은 관심이 떨어졌다. 마산방어전투에서도 해병대가 치른 진동리 전투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고 그동안 관련 행사도 꾸준히 개최되는 것을 보면 주력 부대에 따라 역사적 재조명 여부가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유명 전투는 국군주도의 전투만 부각하면서 정작 6·25전쟁의 승패를 좌우한 방어전투는 미군 주도로 이뤄지면서 사료도 부족하고 중요 전투에서 제외된 아쉬움이 있다. 강호증 경남대 군사학과 교수는 “한국군이 주력인 전투 같은 경우는 관련 증언, 사료를 확보하기 쉽기 때문에 역사적 자료도 많이 만들어져 잘 알려졌지만, 마산 방어전투는 미군이 주된 전투였기에 중요한 전투지만 관련 자료들을 찾기 힘들었다”며 “전투 당시 미군에 연구 기록관이 전투 내용을 기록했지만,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철수하면서 관련 자료들을 미 기록청으로 이전했다. 한국은 미 기록청에 접근하기도 힘들기에 자연스럽게 잊힌 거 같다”고 말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북산 감제고지에서 39사단 장병들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2작전사 유해발굴팀원들이 6·25전쟁 당시 마산방어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유해발굴을 하고 있다./경남신문 DB/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북산 감제고지에서 39사단 장병들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2작전사 유해발굴팀원들이 6·25전쟁 당시 마산방어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유해발굴을 하고 있다./경남신문 DB/

    ◇재조명 위해 기념사업회 출범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마산방어전투를 기억하고자 지난해 9월 ‘마산방어전투기념사업회’가 창립됐다. 배대균 마산방어전투기념사업회 상임대표는 2016년 진해 미 해군 사령관의 추천서를 받아 미국 정부 서류저장처에 보관된 마산방어전투 당시 미 25사단의 전투일지를 확보했다. 이후 3년간 A4용지 500매 분량의 일지를 직접 번역해 책 ‘마산방어전투’를 출간했다. 그는 금속탐지기를 미국에서 직접 사 와 전투일지에 나타난 전적지를 100차례 이상 답사해 탄환, 포탄 파편, 군복 단추 등을 발굴하기도 했다.

    또한 마산방어전투에 참전한 학도병 류승석(91)씨의 생존을 파악하기도 했다. 류씨는 전투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해 인민군 복장으로 위장한 채 적진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맡았다. 류씨는 기념사업회 고문을 맡으며 안보 교육 활동하고 기념관 설립의 필요성을 지역 사회에 전파하고 있다.

    김경환 사무총장도 여러 차례 국회를 방문해 전쟁기념관 건립 필요성과 마산방어전투가 잊혀져 가고 있는 현실을 국회의원들에게 알렸다. 김 사무총장은 “한 국회의원을 만나 역사적인 마산방어전투가 잊혀 가고 있다고 호소하니 ‘한미우호관계의 상징이기도 하고 수많은 군인이 전사한 전투인데 기념할 수 있는 기념관 하나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 수치다’라고 답했다. 기념관이 하루빨리 건립돼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기념사업회의 활동으로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마산방어전투의 의의 토론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군사편찬연구소와 학계 교수들이 참석해 마산방어전투의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지난해 12월 창원시의회 5분 자유발언에서도 기념관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천수 창원시의원은 “마산방어전투기념사업회와 시민들이 지역 역사를 알리기 위해 활동하고 있지만 민간에서 추진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너무나 힘들다”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창원시에서는 지역의 중요한 역사유산인 마산방어전투를 후대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기념관 건립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건의했다.

    서북산 일대에서 발견된 마산방어전투 당시 유물. 왼쪽은 북한군 뱃지로 추정.
    서북산 일대에서 발견된 마산방어전투 당시 유물. 왼쪽은 북한군 뱃지로 추정.

    ◇전쟁기념관 건립 논의 빨라질 듯= 기념사업회와 시민들의 노력에 응답하듯 향후 창원시는 전쟁기념관 건립 논의가 빨라질 전망이다. 신임 홍남표 창원시장 당선인도 방어전투 전쟁기념관 건립에 대한 의견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홍 당선인은 “낙동강방어선 주요 전투 중 포항·영천·다부동·박진 전투는 많이 알려진 반면, 마산방어전투는 별로 조명을 받지 못 했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마산의 뜻있는 분들이 민간 차원에서 ‘마산방어전투기념사업회’를 결성해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마산방어전투 전적기념비와 기념관 건립도 국가보훈처 차원의 선양사업과 연계해 추진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민간 차원의 기념사업회의 활동과 지자체 차원의 공론화 과정 등을 거치면서 마산방어전투 의미를 지역은 물론 전국에 널리 알리고, 이를 토대로 기념사업의 방향을 정립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박준혁 기자 pjhn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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