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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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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ON- 트렌드] 민화의 재발견

일상, 민화를 입다

  • 기사입력 : 2022-06-03 08: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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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의 다른 말이 곧 ‘트렌드’ 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전통적인 회화를 떠올리게 하는 비스포크 광고와 디자인이 인기다. 전통적 아름다움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진일보해 고아하면서도 트렌디한 감각을 재해석해 내보이는 것이 관건이다.

    올해 열린 제4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기념파티에서 영국의 배우 겸 가수 리타 오라가 한국 전통민화가 수놓인 드레스를 입어 화제가 됐다. 바닥까지 늘어진 흰색 가운 아래쪽에 소나무, 사슴, 산 등 낯익은 그림들이 보인다. 드레스를 제작한 패션디자이너 박소희씨는 자신의 SNS(인스타그램)에 “민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민화는 이름 없는 평범한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이다. 한국 민속예술의 멋을 공유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18~20세기 초 조선시대 서민들에게 유행한 민화가 예술계, 산업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전통회화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고 잡화, 속화라는 명칭으로 천대 받던 민화가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8~20세기 조선시대 서민들에게 유행한 ‘민화’ 최근 인기
    개인 욕망 드러내는 진솔함, 현대예술 흐름과 맞아떨어져

    유통계, 민화 협업한 화장품·가전 선보여… 취미로도 각광
    경남도립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민화 주제 전시 열기

    영국에서 활동하는 박소희 디자이너가 돌체앤가바나의 후원으로 제작한 2022 F/W 컬렉션 제품. 민화를 모티브로 해 눈길을 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박소희 디자이너가 돌체앤가바나의 후원으로 제작한 2022 F/W 컬렉션 제품. 민화를 모티브로 해 눈길을 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박소희 디자이너가 돌체앤가바나의 후원으로 제작한 2022 F/W 컬렉션 제품. 민화를 모티브로 해 눈길을 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박소희 디자이너가 돌체앤가바나의 후원으로 제작한 2022 F/W 컬렉션 제품. 민화를 모티브로 해 눈길을 끈다.

    ◇조선의 ‘비스포크’= 민화는 사대부의 전유물이던 문인화와 결이 다르다. 이름 모를 민간 화가들이 조선후기 평민의 수요에 맞춰 주문 제작한 게 민화의 시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민화는 ‘말하는 대로’, ‘개인 주문에 따라 맞춘’이라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 ‘be spoken for’에서 유래한 ‘비스포크’인 셈이다. 소비자인 평민의 입맛대로 제작, 생산하는 맞춤형 시스템을 가졌다.

    민화의 장점은 창의적이고 자유롭다는 데 있다. 궁중회화를 담당했던 도화서 화원이나 자비대령화원도 본그림을 이용해 창작했지만 이들은 본그림을 베껴 그리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똑같은 그림을 수만 점 그려 팔기도 했다. 민화는 전통과 형식에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양식을 창조할 수 있었는데, 이는 개개인의 취향과 정서에 맞는 자유분방한 그림을 창작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최근 민화가 주목받는 이유와 맥을 같이 한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욕구를 솔직히 드러내는 민화의 진솔함이 현대예술 흐름과 부응한다고 말한다. 문인화가 절제된 색상의 수묵화로 유교의 충효사상을 다뤘다면 민화는 백성들의 욕망을 가감없이 담았다. 파랑, 빨강, 노랑, 검정, 흰색의 오방색을 자유롭게 활용해 개인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원초적인 욕망을 반영했다.

    경남도립미술관 황혜홀혜 전에 전시된 민화 작품들.
    경남도립미술관 황혜홀혜 전에 전시된 민화 작품들.
    경남도립미술관 황혜홀혜 전에 전시된 민화 작품들.
    경남도립미술관 황혜홀혜 전에 전시된 민화 작품들.
    경남도립미술관 황혜홀혜 전에 전시된 민화 작품들.
    경남도립미술관 황혜홀혜 전에 전시된 민화 작품들.

    ◇K아트 선두주자= 경남도립미술관은 지난해 민화를 주제로 ‘황혜홀혜(恍兮惚兮)’ 전을 열었다. 조선 서화미술의 신비로운 예술세계인 민화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한 전시로, 미술관에서 보기 드문 민화 전시를 기획해 주목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일부터 9월 25일까지 과천에서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생의 찬미’를 열고 있다. 한국 채색화의 전통적인 역할에 주목하고, 각 역할별로 19세기~20세기 초에 제작된 민화와 궁중장식화, 그리고 20세기 후반 이후 제작된 창작민화와 공예, 디자인, 서예, 회화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80여 점의 작품들로 구성된 특별전이다. 예술계에서 민화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21세기 세계 예술계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 퀸스칼리지 아트센터는 한 달간 민화 전시를 열었다. 앞서 2016년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과 뉴욕 찰스왕센터, 캔자스대 스펜서미술관이 1년 넘게 ‘조선민화 특별전’을 연 데 이어 2020년 미국 뉴욕 패션공대(FIT) 미술관이 민화 전시를 개최했다. 시카고미술관은 2017년 발간 도록에서 폴 세잔의 정물화와 민화 ‘책거리’를 나란히 선보이며 ‘한국의 정물화’로 소개하기도 했다.

    민화를 담은 수려한 화장품
    민화를 담은 수려한 화장품.
    민화를 담은 수려한 화장품
    민화를 담은 수려한 화장품.

    ◇민화 옷 입는 제품들= LG생활건강 ‘수려한’은 지난달 현대적이고 새로운 모던 민화를 그리는 서하나 작가와 협업해 제품디자인을 했다. 수려한 마케팅 담당자는 “봄에 피는 화려한 모란꽃으로 부귀와 복을 소망하는 의미를 표현하고 화병에 그려넣은 새를 통해 더욱 진취적인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설명했다.아모레퍼시픽의 뷰티 브랜드 한율 역시 임인년 새해를 맞아 ‘호랑이 민화 컬렉션’ 제품을 한정 출시했다. 민화를 현대적 감성으로 베스트셀러 제품 3개와 설 명절 2종 선물세트 제품 3개에 담아 선보였다. 제품 출시와 함께 호랑이 민화 디자인을 활용한 숏폼 콘텐츠를 선보이고, 고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호랑이 AR필터’도 SNS(인스타그램)에서 배포하기로 했다.

    지난해 9월 디지털 아티스트 해더림은 장수를 기원하는 민화인 십장생도를 형상화한 배경에 삼성전자 제품을 배치한 일러스트를 내놓았다. 달나라에 살고 있을 토끼 두 마리가 건조기, 세탁기 옆에서 절구를 찧고 있거나 의류관리기 칸칸에 꽃신이 들어있는 그림은 해학미가 돋보인다. 삼성전자는 SNS에 이 사진을 내걸며 “십장생도 속 자연 그리고 동물처럼 평생 함께하는 의류케어 가전”이라고 광고했는데, 시각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MZ세대에게 효과를 톡톡히 봤다.

    지난해 9월 디지털 아티스트 해더림과 삼성전자가 콜라보한 '십장생도' 일러스트./삼성전자SNS/
    지난해 9월 디지털 아티스트 해더림과 삼성전자가 콜라보한 '십장생도' 일러스트./삼성전자SNS/
    지난해 9월 디지털 아티스트 해더림과 삼성전자가 콜라보한 '십장생도' 일러스트./삼성전자SNS/
    지난해 9월 디지털 아티스트 해더림과 삼성전자가 콜라보한 '십장생도' 일러스트./삼성전자SNS/
    지난해 9월 디지털 아티스트 해더림과 삼성전자가 콜라보한 '십장생도' 일러스트./삼성전자SNS/
    지난해 9월 디지털 아티스트 해더림과 삼성전자가 콜라보한 '십장생도' 일러스트./삼성전자SNS/

    ◇‘힐링 취미’로 각광= 호랑이해를 맞아 민화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백화점 문화센터나 주민센터, 개인 화실 등에서 쉽게 강좌를 들을 수 있다. 최근엔 ‘클래스101’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배울 수 있다. ‘화조영모도’ 등 전통적 민화를 배우려고 찾는 이도 있지만 현대적인 감성을 더한 민화를 그리려는 사람도 많다. 책을 중심으로 책장에 놓인 조상들의 일상 소품을 그린 ‘책가도’의 경우, 부채, 술잔, 도자기, 주전자 등을 주로 그리는데, 손거울, 립스틱, 화장품 등으로 변경해서 현대적 감성을 더하기도 한다.

    민화 수업을 들으려면 선붓, 채색 붓, 바림붓, 붓 말이, 그림화판, 한국화물감 등이 필요하다. 선붓으로 그리기 전에 밑그림을 종이 밑에 두고 따라 그리면 된다. 먹물과 물감을 조금씩 섞어서 가늘게 선을 따라 그린다. 차분히 색을 입히는 작업은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잠시 아무 생각 없이 민화에 집중하고 천천히 채색해 내가는 과정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수강생들의 후기가 많은 까닭이다. 민화를 겨레그림이라 부르듯 우리 생활과 밀접한 사물을 많이 그리는데, 그림마다 의미를 해석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민화는 소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그림을 간직하는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기도 한다. 석류, 복숭아 등은 번영과 장수, 다복을 의미하고 물고기는 입산양명을 뜻한다. 대체로 상징체계는 소재를 나타내는 한자어의 모양, 발음을 토대로 하거나 생태와 모습에서 의미를 가져온 것들이 많다.

    창원에서 매주 한 번 민화 수업을 듣고 있는 이미선씨는 “민화는 따라 그릴 수 있는 본이 있기 때문에 초심자도 수월하게 익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또 “색이 잘 스며들고 번지는 한지의 특성상 한 번에 덧대면서 칠하면 찢어질 수 있어 색을 여러 번 입히는 작업인 ‘바림’이 중요하다”며 “쉬운 듯하지만 민화의 깊이감을 더할수록 매력을 느끼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미선씨가 취미로 그린 민화 작품.
    이미선씨가 취미로 그린 민화 작품.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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