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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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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분노의 올바른 사용법- 김대군(경상국립대 윤리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22-06-01 00: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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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은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보궐선거일이다. 민주주의에서 선거일은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입증하는 날이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 참여와 권리 행사의 기본적인 방법이 선거이기에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도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광역단체장을 비롯해서 일곱 개의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니, 말인즉슨 민주주의의 ‘꽃다발’을 피워내는 축제의 날이라 해도 될법하다. 지지자의 당락에 따라 기쁨과 아픔이 있더라도 축제의 날의 의미를 함께 키워가야 하는 날이라 하겠다.

    그런데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지난 대선만 봐도 선거일이 축제의 날이 되지 못하고, 선거 후에 분노로 후유증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거가 끝난 후의 사실 보도 기사들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SNS나 동영상 채널의 댓글들을 보면 분노의 표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정치 혐오에 빠져들기도 한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사회문제가 되면 선거는 축제가 아니라 필요악이 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분노를 무시당한 것에 대해 복수를 하려는 괴로움을 수반한 욕구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선거로 인한 분노는 자신의 투표가 무시당한 것에 대한 복수하려는 욕구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가 지나친 것이 아니라면 정의로운 것으로 본다. 마땅히 화를 내야 할 일에, 마땅한 방식으로, 마땅한 때에, 마땅한 시간 동안 화를 내는 것은 지나치게 화를 내는 것과 화를 낼 줄 모르는 것에 비하면 정의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세네카(Seneca)는 분노는 제거해야 할 악으로 본다. 누구든지 분노에 사로잡히면 어떠한 의무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투표가 문제가 아니라 분노 앞에서는 부모도 자식도 없다는 것이다. 세네카는 유용하기 때문에 분노를 잘 조절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분노는 분별력을 파괴하기 때문에 잘못한 자를 훈계하고 질책하는 것이 필요하더라도 분노는 훈계와는 양립할 수 없다고 본다. 분노의 표출이 일을 바로 잡는 때가 있더라도 분노가 유일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분노의 선택은 최악이라는 것이다.

    사실 분노는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으로 그 자체를 없는 듯이 할 수는 없다. 어떻게 표출하고 해소하는가가 중요한데 분노의 감정은 주로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해소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강자에게는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면서 약자에게는 수시로 분노를 폭발시키기 쉽다. 분노의 감정 표출이 부정의에 대한 저항이 되려면 부정의 상태에서만 분노하는 완전성이 확보돼야 가능한 것이다. 자의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분노로 정의로움을 내세우는 것은 신뢰하기 어렵게 한다.

    부정의에 대항해 도덕적 분노를 해야 민주시민의 자격이 있다는 신념도 가치가 있다. 다만 분노의 사용권을 독점하는 데는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폐단이 크다는 데에 우려가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분노는 정신적 건강을 해치고 우울감, 자책감으로 기운을 빼앗아 간다. 사회적으로 분노는 시민들의 정서를 격렬하게 해서 통합을 해치게 된다. 이번 선거가 끝나고 결과가 나오게 되면 성취감을 느끼는 유권자들 못지않게 허탈감 또는 분노를 떨쳐내지 못하는 유권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투표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민주시민의 자격을 갖춘 것이다. 투표 전과 달리 투표의 결과에 대한 분노의 사용권은 미루어두는 것이 어떨까?

    분노의 올바른 사용법은 사적으로 분노의 사용권을 남용하지 않는 데 있다 하겠다. 분노의 표출은 모든 덕목들을 분노 속에 매몰시키므로 제거해야 할 악으로 보든, 분노의 표출은 정의를 지키고 부정을 단죄하므로 용기 있는 행동이라 보든, 분노는 인간의 감정임으로 각자 자신이 다스릴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에서 투표하는 것은 사표가 되더라도 자율적 권리행사를 했고, 민주시민으로서 자존감을 지킨 것이니 품위를 갖고 분노도 다스리는 것이 좋겠다. 당선자가 대등하든 열등하든 투표 후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것은 분노의 올바른 사용법은 아니라 하겠다.

    김대군(경상국립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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