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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0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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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선술집의 낭만과 추억- 전창우(수필가)

  • 기사입력 : 2022-05-19 20: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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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 마셔도 폼이 나는 선술집을 찾아 어둑해지는 거리로 나서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1970년대 중반, 마산 창동 불종거리에 있던 삼성약국 뒤편 골목에 다소 파격적인 새로운 술집이 생겼다. 나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벽은 온통 까만색으로 도배돼 어두컴컴하고 색다른 실내가 나온다. 음악의 집이다. 젊은이들은 기존의 대중가요를 멀리하고 포크송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던 때이다. 음악다방에서는 팝송을 주로 틀어 주는 것이 대세였다.

    청바지 입고 기타 뜯고 생맥주 마시던 시절이었지만 술은 주로 막걸리를 마셨다. 맥주병에 막걸리를 넣어 조금 고급지게 팔던 곳도 있었다. 음악의 집 역시 막걸리에 두부 등 소박한 것이었지만 내부에 흐르는 분위기만은 멋있고 매력적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몸과 마음이 울렁거릴 정도로 크게 틀어주던 클래식 음악 때문이었다. 술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면 손가락, 젓가락, 숟가락들이 지휘봉이 돼 신명이 났다. 클래식으로 호화로운 사치를 누렸다.

    칼바람이 코끝을 찌르는 한겨울이 되면 간절하게 생각나는 맛이 있다. 따끈한 정종 대포 한잔이다. 그럴 때는 훈훈한 맛과 멋이 살아 있는 오랜 단골 선술집으로 간다. 정종은 오뎅과 같이 먹어야 제격이다. 연탄불 위에서 오뎅이 설설 끓는다. 길쭉한 스텐 잔에 정종을 붓고 오뎅 국물에 속을 데운다. 술의 온도를 재는 것은 주인장의 새끼손가락이다. 오랜 세월 터득한 노하우다. 마시기 딱 좋은 상태로 맥주잔 크기의 대폿잔에 찰랑찰랑 부어준다. 술과 따끈한 국물로 추위는 저 멀리 달아난다.

    마산은 뭐니 해도 통술집을 빼놓을 수 없다. 오동동 골목마다 있었던 요정들은 가라오케와 통술집에 밀려 사라졌다. 하나 둘 생겨난 통술집은 처음 시작할 때는 안주는 돈을 받지 않고 술값만 받았다. 그렇다고 대충 만들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상 가득 맛있게 나오는데 해물이 중심이다. 안주 값을 받지 않는 대신 맥주를 많이 마셔야 했기에 우리끼리 통술이라 불렀다. 뒤늦게 생겨난 만초집은 기본안주는 부족해도 음악을 흥겹게 틀어주어 많이 찾았던 곳이다. 입구 유리벽에 ‘술과 소리가 있소이다. 그냥 갈랑겨’라는 문구로 발길을 멈추게 했다. 가게 벽에는 오래된 사진들이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어 역사를 말해주었다. 모두 환한 웃음을 짓고 있지만 고인이 된 사람들도 많았다. 주인장의 클래식 인생도 올 봄에 막을 내렸다. 요즘은 신마산 일대에 통술거리가 생겨 마산을 상징하는 명소가 됐지만 옛날만큼은 아니다.

    선술집은 가난한 문인들과 서민의 술집이다. 허름한 뒷골목 조금은 우중충하고 먼지도 끼인 듯한 분위기가 정겨웠다. 한낮에 대포 한 사발 걸치러가도 반겨주는 주인장의 넉넉한 미소와 고향집 같은 편안함이 매력이었다. 이제 거리에 낭만이 넘쳐흐르던 시대는 추억의 장으로 사라졌다. 문인들의 사랑방이자 안식처였던 성광집도 고모령도 역사의 뒤안길로 자리매김을 했다. 그 따뜻하고 편안했던 시절이 그립기만하다. 방금 힘겹게 탈고한 원고를 생각하며 한잔 하고 싶은 저녁이다.

    전창우(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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