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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 2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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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문화의 향기] (23) 밀양 청학서점

취향을 사고 경험을 파는 ‘백년 책방’

  • 기사입력 : 2022-03-15 21: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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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브리얼 제빈의 소설 ‘섬에 있는 서점’에 “서점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잖아”라는 구절이 있다. 그 말이 무색하게 동네서점은 경영난에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에 밀려 설 자리를 잃던 동네책방이 최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책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책을 매개로 이웃과 소통하고 일상이 되는 ‘문화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다.

    책과 문화가 있는 공간을 목표로 지역주민에게 책을 통한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밀양 청학서점을 찾았다.

    2대째 이어가는 책방
    고 신상화 사장, 1961년 밀양 삼문동에 문 열어
    현재 신찬섭·이미라 부부가 이어받아 운영 중
    운영 위기에 2019년 주거밀집 지역으로 이전
    추억 깃든 공간, 시민 위한 문화공간으로 개방

    책·문화가 있는 서점
    밀양교육청과 협약 맺은 후 햇살학교로 운영
    책방 살리기 위해 전시·공연 등 프로그램 비롯
    9년째 다락방·고독 등 6개 독서모임 진행 중
    그간 감상 모아 서평집 ‘독한 사람들’도 펴내

    사람과 문화 잇는 ‘백년 책방’으로
    1층엔 유아책·참고서 등 다양한 책 가득
    2층 북카페는 커피 마시고 문화 즐길 수 있어
    “손님 원하는 책이 우리 서점의 큐레이션
    동네 책방서도 손쉽게 문화예술 즐겼으면”

    밀양시 삼문동 청학서점에서 직원이 책을 정리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밀양시 삼문동 청학서점에서 직원이 책을 정리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열정 넘치는 관록의 책방= 밀양의 새로운 도심인 삼문동에 위치한 청학서점은 1961년 문을 열었다. 창업자인 고 신상화 사장의 뒤를 이어 신찬섭(48), 이미라(47) 부부가 2대째 운영하고 있다. 신 대표는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가업을 이어받았다.

    청학서점은 밀양의 터줏대감 격의 공간이다. 구도심에 있던 책방은 영남루와 가까워서인지 꽤 긴 시간 밀양의 랜드마크였다. 버스 정류장 이름으로 쓰일 만큼 유명해 누군가에겐 만남의 장소로, 다른 이에겐 고단한 퇴근길 불빛을 밝혀주던 기억이 켜켜이 쌓인 곳이다. 2019년 5월 신도심 주거밀집 지역으로 이사했다. 이 대표는 “구도심의 상권이 점점 죽어가고 신도시의 문화 인프라가 부족해 내린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청학서점의 이전 소문이 나자 추억을 공유한 주민들이 아쉬워했다. 부부는 고심 끝에 임대나 매각 대신 원래 공간을 시민들에게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내어주기로 했다. 대신 청학서점의 간판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현재는 밀양교육청과 협약을 맺고 햇살학교로 운영하고 있다.

    밀양 청학서점 외관.
    밀양 청학서점 외관.

    책방지기의 삶은 고상해 보이지만 현실은 고되다. 신 대표는 아침 7시면 출근해 거래처에 주문을 확인하고 약속된 시간에 책 배달을 간다. 회계와 세무 관련 일을 뚝딱 처리하는 것도 책방 주인의 몫이다. 책방을 지키다 밤 10시에 문을 닫는다. 61년 동안 문을 연 관록의 책방이지만 이색적인 프로그램이 많아 여전히 활기가 넘친다. 공연, 전시, 독서모임 운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프로그램 운영을 도맡는 이 대표는 “국문과나 마케팅 전공자냐는 이야기도 간혹 듣는데, 그냥 예술과 책을 좋아하는 주부였다”며 “프로그램을 시도하게 된 건 지역에서 책방으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말했다.

    1층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2층 북카페에서 책과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사진은 1층 카운터 모습.
    1층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2층 북카페에서 책과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사진은 1층 카운터 모습.

    ◇“인생 책 찾아드립니다”= 2013년 1월 옛 청학서점 3층 북카페에서 독서모임 ‘다락방’이 결성됐다. 이름 그대로 삐걱거리는 오래된 나무계단을 따라 오른 다락방에서 회원들은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책을 읽고 열띤 토론을 했다.

    이 대표는 독서모임에 어떤 사람이 올 것 같은지 물었다. 이내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찾는다고 답했다. 독서모임 ‘다락방’ 소문을 들은 책방 손님 가운데 몇몇이 관심을 보이자 이 대표는 책방 한쪽에 ‘불특정 다수’를 위한 모임을 만들겠다고 써붙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임인 ‘불특정다수’ 외 맬로디, 불특정다수, 북센스, 막독, 고독 등 6개 독서모임이 운영 중이다. 독서모임엔 이 대표가 모두 출석한다.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지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고단할 법도 한데 되려 회원들에게 배우는 게 더 많다며 즐겁단다. 지금은 코로나 탓에 잠정 중단되거나 토론 없이 책 읽기만 진행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간의 감상을 모아 청학서점 서평집 ‘독(讀)한 사람들’ 두 권을 펴냈다. 부족함을 덮어보려 나이 50에 책 모임에 나오게 됐다는 조경수 회원은 “독서모임은 내가 고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했고, 독서라는 취미 이상의 것을 선물했다”고 서평에 적었다. 이 대표는 “인생책을 찾았다며 두 달 동안 ‘설국’의 서평을 썼다 지웠다 하는 회원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앞으로도 꾸준히 책 모임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

    1층은 서점과 2층은 북카페로 책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운영 중인 밀양 청학서점./성승건 기자/
    1층은 서점과 2층은 북카페로 책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운영 중인 밀양 청학서점./성승건 기자/

    ◇주민의 삶 스며드길= 서점 1층엔 유아를 위한 스티커책부터 참고서,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 등 다양한 책들이 채워져 있다. 구석의 커피머신도 눈에 띈다. 커피에 ‘진심’인 신 대표가 원두를 직접 로스팅한다. 북카페 이용객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고 싶어서다.

    고소한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계단에 오르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북카페를 마주할 수 있다. 벽에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줄지어 있는데 ‘청학서점 독서감상화 전시’ 작품들이다. 올해 4회째로, 밀양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책을 읽고 그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한 전시이다. 아이들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도록까지 제작했다. 테이블과 의자들 너머 검은색 피아노가 놓여 있다. 공연에 쓰인다고 했다. 밀양 사람들의 ‘문화사랑방’을 자처하는 청학서점에선 독서모임을 위시로 시낭송, 영화상영회, 클래식 연주회, 재즈 콘서트, 강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청학서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독서모임./청학서점/
    청학서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독서모임./청학서점/

    신 대표는 “밀양은 지방 소도시의 특성상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접하기에 콘텐츠가 부족하다. 인프라뿐만 아니라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문턱 높은 공연장, 전시장이 아닌 동네책방에서 손쉽게 문화예술을 즐기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자연스레 예술을 만나고 지역의 예술인들과 협업해 좋은 프로그램을 꾸준히 내놓은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문화가 있는 날 사업에 선정돼 ‘소소한 콘서트 시리즈’로 클래식 음악 공연을 열었다. 이 대표는 사실 클래식 공연이 생소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많았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우려와 달리 코앞에서 즐기는 피아노 연주에 지역민의 호응이 쏟아졌다.

    동네에 사는 작가가 곰돌이 캐릭터로 열쇠고리 만들기 프로그램을 하는 등 지역 주민이 직접 문화활동을 만들기도 했다. 행사의 나열에서 그치지 않고 지역주민들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 감각을 키운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3년째 수행한 공모사업이 없어져 아쉽지만 지치지 않고 그간 쌓은 인맥과 경험을 자산으로 책과 음악, 미술이 어우러지는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1층은 서점과 2층은 북카페로 책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운영중인 밀양 청학서점./성승건 기자/
    1층은 서점과 2층은 북카페로 책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운영중인 밀양 청학서점./성승건 기자/

    청학서점은 ‘큐레이션’에 강점이 있는 신생 동네책방과 결이 사뭇 다르다. 이 대표는 “동네 손님이 원하는 책이 우리 서점의 큐레이션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세월 덕에 3대가 함께 책방을 찾기도 하고 고향에 오면 오랜 친구를 만나듯 들리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소통하는 ‘백년 책방’이 되도록 자리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참으로 각박한 시대다. 코로나 팬데믹이 세상을 휘젓자 가까운 이에게 손 내밀지 못하는 삭막한 나날이 이어진다. 청학서점은 고약한 역병에 굴하지 않고 공동체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공간을 일구고 있다. 문화를 살찌우고 사람이 머무는 ‘백년서점’으로 자리하길 기대한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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