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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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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신 평준화 사회-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 기사입력 : 2022-03-15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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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년대 생 70년대 학번인 우리 세대에게는 그 옛 추억 속에 ‘평준화’라는 단어가 있다. 치열했던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고 이른바 ‘뺑뺑이’를 돌려 학교를 배치함으로써 ‘KS’로 상징되던 이른바 명문들의 특별한 위상이 사라진 것이다. 아이들을 입시의 경쟁에서 해방했다는 명분은 있지만 그게 국가적으로 과연 바람직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사람들의 견해가 날카롭게 갈린다.

    “모든 것에는 서로 마주 보는 대립이 있다”고 설파한 그리스의 거철 헤라클레이토스의 말 대로 이 사안에도 당연히 장단 양면이 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장단 어느 쪽에 대해서도 편들기가 쉽지 않다. 긍정적인 면을 칭찬하는 것과 부정적인 면을 비판하는 것은 둘 다 철학이 권장하는 가치에 속한다.

    그것을 전제로 하고 보면 한 가지 풍경에 눈에 들어온다. 평준화가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의 ‘도우인(TikTok)’이 자주 보여주는 국가별-시대별 비교 그래프를 보면 1960년대~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여러 면에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는데, 그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 이른바 ‘상층부’의 엘리트들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물론 ‘개천용’이나 ‘민초들’의 인생을 건 노력도 마찬가지로 부인할 수가 없다.)

    지금 시대(2020년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만일 진정한 선진국을 목표로 한다면, 지금도 여전히 ‘상층부’의 엘리트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경제뿐만이 아니라 사회-문화를 포함하는 모든 면에서 그 수준이 두드러진 ‘상류’ 내지 ‘일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지금 우리 시대에 그런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심각한 사태를 전제로 한다. ‘일류’의 실종, 혹은 행방불명, 이게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이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름들 중에서 “여기 내가 있소”라고 자신 있게 손을 들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그런데도 손을 드는 사람들은 물론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손을 믿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른바 ‘거대담론’을 밀어내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작은 이야기’들이 주류가 된 모양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승리?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승리는 결코 칭찬할 영광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이 지상에서 ‘훌륭한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존경’이라는 것을 폐기 처분했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사회 전체에서 목격되는 하향평준화이다.

    그렇고 그런 잡동사니들이 힘을 갖고 설쳐댄다. TV를 켜고 신문을 펼치기가 겁이 난다. 소위 SNS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아무래도 좋은 언어들이 넘쳐난다.

    다 어디로 갔는가. 존경할만한 훌륭한 사람들은.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더 척박한 토양이었던 저 60년대 70년대에도 그런 사람들은 자라났었다. 그들이 세계의 바닥권이었던 이 나라를 10대 선진국으로 끌어올렸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대오각성하고 개과천선해서 그런 인물들을 찾아내야 하고 양성해야 한다. 지금 이대로의 시스템에서는 그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것은 현실로써 이미 증명됐다.

    그렇다면 대안은? 사람들이 그걸 모르지는 않는다. 교육과 독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사회적 평가’다. 어떻게든 그것을 제도화해야 한다.

    붕괴된 교육 메커니즘을 복원해야 한다. 가정교육-학교교육-사회교육 3대 채널 모두다. 그것을 통해 ‘가치의 복원’이 시도돼야 한다. 잡동사니는 쓰레기통으로 그리고 보배들은 보석함으로 자리를 재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적 ‘일류’들의 깃발이 다시 하늘에 펄럭이고 사람들이 그것을 쳐다보며 존경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질적인 고급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최소한 중국보다는 나은, 일본보다는 나은, 그리고 유럽보다도 미국보다도 더 나은 그런 고급이다. 그런 방향으로 이 나라를 이끌 지도자는 없는가. 부디 손을 들어주기 바란다.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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