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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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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수주대토와 법불아귀-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 기사입력 : 2022-03-10 03: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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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宋)나라에 어떤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는데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뛰어와서는 그루터기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었다. 힘들이지 않고 토끼를 얻은 농부는 그날부터 농사일을 집어치우고 매일 그루터기 앞에서 토끼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유명한 수주대토(守株待兎) 이야기로 출전은 ‘한비자’다. 한비자는 무슨 뜻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우연히 일어난 일이 다시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같아서 요순처럼 훌륭한 임금이 나타나기만을 기리는 것은 수주대토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같다. 우연에 기대지 말고 시스템을 갖춰 일하자. 이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비자는 전국시대 말기, 전쟁의 시대를 살았다. 이런 시대는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그가 법에 의한 객관적 통치를 주장한 것은 이런 시대적 배경과 인간관 때문이다. 한비자는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이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짜는 사람은 사람들이 일찍 죽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람들이 부귀해져야 수레를 많이 타고, 일찍 죽어야 관이 잘 팔리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을 중요시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법에 의한 엄격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유가(儒家)에서는 덕을 갖춘 리더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사실 사람에 의한 정치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객관성을 갖추기 어렵다. 사랑과 배려 같은 개인적인 감정으로 운영되는 조직은 객관적 기준이 사라져 어떤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인색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면 누가 리더의 말을 따를까. 객관적인 법과 눈에 보이는 결과로 판단하는 것이 공정하다.

    물론 법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이 잘 집행되려면 술(術)과 세(勢)가 갖춰져야 한다. 술은 군주의 통치기술을 말한다. 임무에 따라 관직을 주고, 책임을 지우고, 능력에 맞게 일을 시키는 것으로 요즘으로 치면 인사권이라고 할 수 있다. 신하에게 마음을 보여서는 안 되고, 신하의 주장과 상황이 맞는지, 말과 성과가 일치하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이런 권한은 군주가 독점하고 나눠주면 안 된다. 상벌에 대한 권한 위임은 없다.

    세는 법과 권력을 집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다. 세력이 강한 왕이 있고 약한 왕이 있다. 피의 숙청을 단행했던 태종 이방원은 세가 강했고, 세도가문에 의해 왕이 된 철종은 믿고 쓸 수 있는 신하가 없었다. 백성이 명령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세력에 달렸다. 세력이 없는 왕의 명령은 실행되기 어렵다. 법도 집행할 수 있는 세력이 있어야 실질적인 힘을 갖출 수 있다. 나라는 군주의 수레이고, 세는 말(馬)이며, 술은 부리는 기술이다.

    한비자의 주장이 너무 냉정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오해하지 말자. 한비자의 말은 가정의 윤리와 사회의 그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가정에는 사랑이 필요하지만, 사회는 법과 규율이 중요하다. 객관적 법과 규율이 지켜지는 않는 사회는 존속이 어렵다. 사회가 무너지면 개인도 위태롭다. 리더의 고민도 이것과 맞닿아있다. 리더도 사람이기에 인간적 감정과 조직적 규율 사이에서 갈등 한다. 인간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싶지만, 지나친 인간미는 객관적 지표를 흐리게 할 수 있다.

    사랑과 법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개인적인 일에는 사랑을, 공적인 일에는 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공과 사를 명확하게 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대신 이것은 공적인 일이기에 어쩔 수 없이 법을 중심으로 한다고 명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기준이 모를 때 오해가 생기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기준을 알리고 동등하게 적용할 수 있느냐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권력도 정보를 숨기기 어려워졌다.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시선이 권력을 지켜보고 있다. 정보의 민주화로 세상이 평등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법은 가진 자들에게 유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 대통령 선거가 한창인 시점에 법불아귀(法不阿貴),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는 법 집행을 기대해본다.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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