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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오직 신만이 아실 일- 허충호(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22-03-08 19: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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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자는 ‘지성은 신과 같다’고 했다. 자신의 신념을 믿고 일에 최선을 다해야 비로소 하늘의 뜻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신은 절대적이라고 하지만 누구나 이런 정성을 다하면 신도 성인도 될 수 있다는 게 공자의 가르침이다. 청년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아테네 시민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소크라테스가 “이제 각자의 길을 가자. 나는 죽기 위해, 당신들은 살기 위해.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고 한 것처럼 오직 신만이 아실 결정의 시간이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이라는 단서가 붙은 대선이라서 그런지 사흘간 실시된 사전투표에서도 역대 최고 투표율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런 역대급을 두고 벌써 정당 간 아전인수식 득실 분석이 난무하고 있다. 사전투표는 진보에 유리하고 보수에게는 불리하다는 종전의 통념을 깨고 거대 양당 모두 사전투표를 독려하고 나선 것도 이번 선거가 표출한 이채로운 장면이다. 정치는 그야말로 생물임을 실감한다.

    선거는 바라보는 자들의 몫이다. 곽정식의 책 ‘충(蟲)선생’ 247쪽에 ‘사물을 바라봄’에 대한 통찰이 있다. 인용하면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막론하고 세상에 ‘보다’ 만큼 많이 사용되는 동사는 없다. 중국어를 예를 들어보면 간(看), 시(示), 견(見), 관(觀), 찰(察)의 의미가 다 다르다. 영어에서는 복잡한 문제나 상황을 분명하게, 그 깊은 내면까지 삽시간에 파악하는 안목을 Insight라고 한다. Insight를 제대로 형성하려면 과거를 보는 Hindsight, 미래를 보는 Foresight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는 대목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대강 보는 간이나 주어진 것을 보는 시, 능동적으로 보는 견, 높은 곳에서 대강을 보는 관, 대강 훑어본 것 중에서 특기할 것이 있으면 좀 더 자세히 살피는 것이 찰이다. 오늘은 간이나 시가 아니라 찰의 능력을 발휘할 때다. 이는 피선거권자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처칠은 “정치가에게는 역사를 보는 눈과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투표자나 후보자나 어차피 귀결점은 ‘보는 눈’이다.

    매번 선거철만 되면 많은 호사가들이 약방의 감초처럼 들고 나오는 게 ‘지도자론’이다. 필자는 지난 2012년 칼럼에서 지도자 유형을 리더(Leader)와 보스(Boss) 형으로 나눠 살폈다. 리더와 보스는 크고 작은 조직을 통솔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통솔의 위치가 대열의 앞이냐 뒤냐에 따라 구분된다는 게 나름의 지론이다. 두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도 서로 다른 철자만큼이나 다르다.

    지도자에게는 ‘권위적’인 아닌 ‘권위’가 필요하지만 보스에서는 전자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지만 경외와 존경을 꼭 동반하지는 않는다. 리더에게서는 반대적 개념이 강하다. 보스와 리더를 구분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가라(Go!)”고 하는 존재인가, “갑시다(Lets go!)”라고 하는 인물인가이다.

    늦어도 내일 새벽이면 5년간의 임기를 부여받는 지도자가 탄생한다. 그가 리더가 될지 보스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차피 주권자의 판단을 받은 이라면 경외와 존경을 수반하는 인물이 되길 바란다.

    젊은 시절, 나치 수용소에서 죽음의 문턱을 오갔던 신경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 박사는 ‘죽음의 수용소에서’(이시형 역)를 통해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항상 판단을 내리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인간’을 ‘대통령’으로 대치해보면 오늘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앞으로 (우리가 그를 통해) 어떤 일을 할 것인지’라는 명제를 두고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투표는 ‘보는 자들의 무거운 몫’으로 남겨져 있다.

    그 결과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지만.

    허충호(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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