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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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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조율의 시간- 강지현(편집부장)

  • 기사입력 : 2022-03-01 20: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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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다. 학원에 놓인 업라이트 피아노는 모두 다섯 대. 모양도 색깔도 소리도 다 달랐다. 그런데 어떤 피아노는 건반이 너무 무거웠고, 어떤 피아노는 어린 내가 듣기에도 소리가 요란했다. 어떤 건반은 소리가 나지 않았고, 어떤 건반은 누르면 한참 뒤에 올라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 피아노들은 어딘가가 조금씩 아픈 ‘환자’였다.

    ▼피아노엔 88개의 건반이 있다. 흰색 52개, 검은색 36개. 건반마다 적게는 하나, 많게는 세 개씩 줄이 달려 있다.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이 줄을 때려서 소리를 낸다. 건반에 달린 230개의 줄은 굵기와 길이가 다 다른데, 그 줄을 1㎜ 단위로 조이고 풀며 아름다운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 조율사다. 말하자면 ‘피아노 주치의’인 셈이다. 조율사는 건반 상태를 점검하고 음색을 맞추는 조율·조정·정음 과정을 통해 피아노를 최적의 상태로 만든다.

    ▼대한민국 조율 명장 1호 이종열씨는 그의 책 ‘조율의 시간’에서 조율은 타협이라고 했다. 그는 음의 위치를 정할 때 위아래 다른 음들에게 묻고 옥타브에게도 묻는다고 했다. 내가 여기 서도 되겠냐고.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찾기 위해선 한 음 한 음만 아름다워선 안 된다. 몇 개의 화음만 아름답자고 다른 음을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만 최고의 음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조율의 ‘민주주의적 타협법’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쉬운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자세다.

    ▼“이제 겨우 기술이 쓸 만하다”는 여든넷의 명장은 “아직도 난 발전 중”이라고 했다. 그는 책에서 ‘모든 기술이 다 그렇듯이 연륜을 더해갈수록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더 알아야 할 것이 생겨나니 발전을 위해 노력하라’고 일렀다. 경남신문은 어제로 일흔여섯이 됐다. 명장의 조언처럼 한 해 한 해 더 새로워지겠다. 그리고 도민들의 목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곳에 서 있겠다. 경남신문의 ‘조율의 시간’은 단단하게 흘러간다.

    강지현(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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