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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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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호루라기 부는 사람-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 사무소 대표 변리사)

  • 기사입력 : 2022-03-01 20: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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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인도 뭄바이의 한 교회에 있는 예수상의 발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은 기적이라 여겼다. 그 물은 질병을 치료하는 성수가 됐고, 사람들은 신의 은총에 감사하며 앞 다투어 받아 마셨다. 그런데 그에 대해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에다마루쿠(Sanal Edamaruku)라는 합리적 회의론자는 동상 뒤쪽의 벽을 지나가는 화장실의 하수관이 막혀 고인 물이 모세관 현상에 의해 동상으로 새어 나온 것임을 밝혀냈다. 그는 TV에 출연해 그 사실을 폭로하면서, 헌금 벌이에 눈먼 교회가 진실을 외면했음도 비난했다. 교회는 그를 신성 모독을 이유로 제소해 징역형이 내려졌고 거기다 광신도들의 살해 협박도 끊이지 않아, 결국 그는 고향을 떠나 핀란드로 이민을 가고 말았다.

    사소한 이적을 기적이라 오해한 지역 주민들의 어리석음에서 시작한 해프닝이었지만, 그를 통해 이익을 누리면서 진실을 말한 사람을 핍박한 교회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이 해프닝에는 세 종류의 인간상이 있다. 화장실 오수를 성수라 여기며 마신 어리석은 피해자 대중과, 그를 통해 득을 본 수익자 교회와, 진실을 밝혀 사람들을 일깨우고 그로 인해 고난을 겪는 선각자인 고발자이다.

    이와 같은 피해자, 수익자, 고발자로 이뤄진 삼각 구도 이슈는 정치, 사회, 비즈니스 등 각 분야에서 드물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한 자동차 회사는 그들이 숨겨온 기술적 문제가 내부고발자에 의해 폭로돼 거액의 과징금을 물고 십 수만 대의 차량을 리콜했다. 대통령 측근의 비리에 대한 내부고발이 온 나라를 한동안 떠들썩하게 하고 결국 현직 대통령을 탄핵으로 물러나게 한 일도 있었다. 이처럼 고발은 사회와 조직에 큰 충격과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진실은 항상 불편하다. 그동안 모르고 당한 피해자조차도 갑자기 나타난 진실이 편치 않다. 가려진 진실을 통해 이익을 누려왔던 수익자는 더 불편하다. 그들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고발자는 보통 골칫거리가 아니다. 그래서 고발자에게 회유, 협박 등 온갖 압박이나 보복을 가하게 되니, 고발자는 거의 예외 없이 인사, 법률 혹은 정치적으로 지극히 힘든 시련을 감내해야 하고, 대부분 다시는 정상으로 복귀하지 못한다. 그러니 고발은 대단한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고발자는 ‘호루라기 부는 사람(Whisleblower)’이라 불린다. 비리나 범죄를 널리 사람들에게 알려 경고하거나 각성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들의 고발은 범죄나 비리를 예방하거나 피해를 줄여 공공의 안전과 권익을 지키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래서 고발자 특히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적절히 보상하기 위한 법률들이 마련돼있다.

    내부고발은 또한 정치나 기업 활동에 있어서의 윤리경영을 촉진하고 부패를 방지하기에, 장기적으로는 사회나 조직의 건강한 성장을 돕는다. 고발자의 호루라기 소리는 조직에 경종을 울리는 ‘신문고’와 같다. 그들이 생존할 수 없는 곳에서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진실에 침묵하면 거짓과 불합리를 걸러내지 못하는 닫힌 사회가 돼, 시대 변화에 대한 탄력적 적응력과 경쟁력을 상실하고 결국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그래서 니체가 말했다. “불편한 진실보다 더 나쁜 것이 침묵이며, 억제된 진실은 독이 된다” 진실의 고발은 불편하지만, 진실에 침묵하는 조직은 더욱 위태롭다. 그러니 무릇 지혜로운 리더라면 호루라기 소리에 항상 귀 기울여 기꺼이 영접해야 할 것이다.

    103년 전 기미년에 우리 온 민족의 정수리에 정신이 번쩍 들도록 내려쳐진 당두봉갈(當頭棒喝)의 호루라기 소리가 있었다. 일제에 저항해 거족적으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이었다. 그 우렁찬 호루라기 소리는 일제의 압제에 점차 시들어가던 민족혼을 되살렸고, 영원히 우리 민족정신을 어긋나지 않게 바로잡아주는 죽비가 될 것이다.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 사무소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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