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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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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투표의 윤리학- 동료 시민에 대한 책임- 홍재우(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 기사입력 : 2022-02-27 2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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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많은 독재자들은 쿠데타 같은 비합법적 방법으로 권력을 쟁취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 민주적 제도가 그들을 키워내기도 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쟁취하기까지는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국민들의 투표가 큰 역할을 했다. 이전 마지막 경쟁적 선거인 1933년 3월 의회 선거에서 히틀러는 43.9%의 지지를 받았고, 곧이어 독재로 가는 길을 열었다.

    그해 11월 나치를 제외한 모든 정당들의 선거 참여가 금지됐다. 세계사적 비극의 시작이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중 하나로 권력을 위임한 유권자 국민들에 대한 ‘책임 정치’를 꼽곤 한다. 그런데 흔히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그 권력을 위임하는 ‘유권자의 책임’이다. 1932년 나치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사민당 등 진보정당을 지지한 40.57%의 유권자들에게 어떤 책임을 졌을까? 물론 나치가 저지른 모든 사악한 범죄와 전쟁의 폐해가 오로지 투표자들의 책임 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이 마냥 옹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선택의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전 독일인이, 나아가 전 세계인이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학자들은 정치 행위를 개인 단위로 쪼개 원자화해 분석한다. 선거를 시장에, 유권자를 소비자에, 투표를 구매 행위에 비유한다. 그래서 ‘나에게 이익을 주는(개인의 효용을 최대한 높이는)’방향으로 투표(구매)하면 된다고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기준은 아니(어야 한)다. 투표와 구매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개인은 시장에서 한 번의 구매를 통해 하나의 효용 가치를 확보하지만, 다른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투표는 다르다. 한 표의 가치는 미미할지라도 그런 선택이 쌓이면 타인에게 막대한 영향을 준다. 투표는 공동체의 집단적인 선택이므로 나쁜 결과를 가지고 오는 투표는 그 ‘소비자’에게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민주주의 속에서 사는 한 투표는, 심지어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동료 시민들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지는 행위다. 보복 소비나 ‘깜깜이 구매’의 피해는 모두가 져야 한다. 책임투표 윤리가 필요한 까닭이다. 윤리는 내가 남과 함께 살기 때문에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어쩌면 1인 1표의 평등 투표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모든 시민이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하고, 권력을 위임하고,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평등한 권리를 가졌다는 이 믿음은 단순한 것이지만 동시에 유권자 시민에 대한 무한한 신뢰 위에 성립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책임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많은 원칙과 제도들이 민주의 살과 뼈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모든 한 표가 동일할까? 심사숙고한 표와 잘못된 판단에 던진 표, 이성과 감정에 의한 표는 모두 동일할까? 이를 외부에서 판단하는 것은 이미 민주적이지 않다. 따라서 결국 유권자 개개인의 태도와 자질이 중요하다. 모든 투표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민주적 원리가 현실에서 관철되기 위해서는 투표자의 책임 윤리가 중요하다.

    선거가 열흘도 남지 않았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 한다. 그 역시 언론과 정치적 무관심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자들이 호명한 탓도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우리는 단순히 호불호의 감정이 아니라 누가 앞으로 이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위해 ‘상대적’으로 더 적합한가를 냉철하게 심사숙고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국가 발전의 어떤 변곡점에 와 있다. 국력을 나타내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중요한 국가가 되었지만 또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기회와 급격히 낙오될 위기가 가까이 있기도 하다. 너무도 빠른 세상의 변화 속에 5년의 실수는 만회하기 어려운 기회의 상실이 될 수 있다.

    지난 탄핵으로 이미 뼈아픈 경험을 하지 않았는가? 무엇이 윤리적 책임 투표인지 잘 따져보고 투표장으로 가자.

    홍재우(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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