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9일 (금)
전체메뉴

[경남시론] 경남의 얼- 안소영(창신대 항공서비스 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22-02-06 20:01:57
  •   

  • 설날에 받은 세뱃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챙겨보고, 구상할 때이다. 80년대 초, 세뱃돈으로 아동들은 공책과 연필을 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검은색 자루의 날카로운 칼로 연필을 멋지게 깎아서 필통 속에 가지런히 넣어주셨다. 아이들은 종종 손이 베였기 때문에 그 칼을 손대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용기 있게 연필 깎기를 시도했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울퉁불퉁했다. 연필 깎는 칼을 자유자재로 쓰는 것으로 어른과 아이를 나누었고, 연필을 깎을 수 있는 것으로 저학년과 고학년을 구분했다. 아이 눈에 어머니가 깎은 연필은 예술이었다. 집집마다 연필 깎은 모양의 차이로 주인을 찾는 때였다. 그 ‘연필 예술’ 속의 ‘단디 공부하라’는 당부를 지금에야 깨닫는다. 그 후 기계 칼이 나왔다. 연필을 넣고 돌리기만 하면 깔끔하게 깎여 나왔다. 그러나 모든 연필이 똑같아져서, 연필 예술은 사라졌다. 당시 경남에서는 미나리 같은 채소를 알뜰하게 가려내어 모양이 좋은 것은 생채로 먹었고, 다소 시든 것은 국에 사용하였으며, 못 먹는 부분은 밭의 거름으로 썼다. 경남의 어머니들은 여간해서 처리해야 할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다.

    2020년 한국은 선진국이 되니, 고쳐 쓰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새로 사면 된다는 생각인 것 같다. 생활 쓰레기가 넘쳐서 모두 걱정이지만 어떻게 할지는 모른다. 쓰레기를 안 만들면 된다. 경남 사람들이 손재주가 좋고, 야무지다는 것을 여러 지방에서 일해 보니 알게 되었다. 이것을 ‘경남 얼’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얼’의 정의는 생각에서 중심이 되는 부분이다. 그 얼은 발전된 경남을 만들었고, 그랬던 경남이 지금은 싫증과 작은 고장을 이유로, 새로 물건을 사고, 버린다. 한 번 쓴 것이 다른 곳에서 사용되도록, 쓰레기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

    만드는 기업과 소비자 간의 사랑스러운 밀어를 나눌 때다. 그런 밀어를 전하며, 절약을 유도하는 기업이 있어 알리고자 한다. ‘카파맥스’는 연필깎이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이 기업은 완제품과 부품을 동시에 판매하고 있다. 연필깎이의 칼과 연필 고정 부품을 따로 구입할 수 있다. 그것도 2000~5000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여 절약과 폐기물 줄임에 기여한다.

    현대인은 물건을 오래 쓰고, 비닐과 플라스틱의 사용은 줄이고, 사용한 것은 재활용과 개선 활용(업사이클링)해야 하는 것이 의무이다. 독일에서 온 교환 학생이 만년필을 쓰는 것을 보고 물었더니, 지구환경 보전을 위해 기름 소재의 불펜 대신 쓰는 것이라고 했다.

    먼저 선진국이 된 나라에서 배울 점이더라. 요사이 연필과 만년필도 쓰지 않고, 인쇄물을 뽑아 읽고 끝낸다. 연필의 자유로움과 만년필의 사각거림의 매력은 모른 채 말이다.

    글씨 수준으로 초등학생과 어른을 구분하기도 어렵다. 터치 스크린이나 컴퓨터 자판만이 글쓰기 도구라고 인식한다. 기계를 통해서만 한다는 생각이다. 그 첨단의 가운데,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있다. 서빙 로봇이 음식을 나르고, 말로 내비게이션을 지시하는 때 무슨 만년필? 조금만 들여다보자. 빅 데이터가 주는 것은 지금까지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수집한 것이 재활용된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 지능의 업사이클 산물일 뿐이다. 간편한 것만 좇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도 생각하고, 정신도 바짝 차릴 때다. 사회의 고위직 인사들이 애용하는 필기구는 아직도 연필과 만년필이다. 항공기 일등석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고 책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오래된 필기구지만, 대체할 수 없는 기능이 있기에 지금까지 리더들의 손에 있다.

    인간의 기록만이 지식을 축척하고 그 토대에서 첨단 기술은 이어진다. 그 첨단의 중심에 인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본주의(人本主義) 사고이다.

    어머니가 곱게 깎아준 연필은 부모와 자식 간의 ‘단디 하자’는 약속이었고, 그 연필을 담은 필통은 학습하는 경남인의 자존심이다. 올바른 어른과 반듯한 학생을 만나고 싶고, 바람직한 자존심으로 가득 찬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것은 경남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이다.

    안소영(창신대 항공서비스 학과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