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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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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인간’의 좌표-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 철학자)

  • 기사입력 : 2022-01-25 2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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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대 초,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화두는 누가 뭐래도 ‘코로나19’다. 먼 훗날 세계사 21세기 편에는 틀림없이 이게 ‘역사적 대사건’으로 기록돼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 한복판에 있어서 그저 쩔쩔매며 이것을 ‘치르기’에 급급하지만, 이건 사실상 인류 최초의 ‘팬데믹’이다. 전 세계를 범위로 어디도 예외 없이 퍼진 사상 최초의 역병인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 그리고 남아공과 한국이 이토록 긴밀하게 얽힌 적이 일찍이 있었던가.

    자연이 만든 바이러스와 인간이 만든 백신 및 치료제의 싸움이 가히 점입가경이다. 우리 인간은 일찍이 이렇게 ‘쎈놈’을 만난 적이 없다. 역병은 많았지만 페스트도 천연두도 결핵도 심지어 막강했던 에이즈도 사스도 메르스도 ‘전 인류’의 적은 되지 못했다. 저들과의 전쟁에서 인류는 나름 승리를 거두었다. 그 무적의 패권자가 바로 우리 인간이었다. 그러면 이번에도? 그러기를 우리는 막연히 예상하지만 아직은 그 결말을 알려주는 ‘미리 보기’가 없다.

    그런데 만만치 않은 이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있다. 혹은 제기하는 문제가 있다. ‘늬들 인간이 대체 뭐냐?’ 하는 것이다. ‘늬들이 과연 세계의 중심인가?’ ‘만유의 주인인가?’ 하는 물음을 코로나19는 우리 인간들에게 들이민다. ‘당연히!’라고 우리는 말하고 싶지만, 작금의 형국을 보면, 쉽사리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손에 기다란 삼지창을 쥐고 꼬리를 흔들고 있는 바이러스들이 낄낄거리며 우리 인간들을 비웃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우리 바이러스 만도 못한 것들이 어딜 감히…’ 저들의 떼창이 오대양 육대주에서 들려온다. 적어도 지금은, 그리고 당분간은 반박의 여지도 없어 보인다.

    이 지점에서 철학은 우리에게 반성문을 요구한다. 그동안 우리 인간들이 좀 너무 설쳐대서, 너무 큰 문제들을 너무 많이 일으켜서, 신이 혹은 자연이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경고를 하고 있는 거라고 철학은 해석한다. (이런 해석이 실천적 맥락에서 유용한 의미를 갖게 되면 이 해석이 곧 진리가 된다. 제임스, 하버마스 등이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나도 이런 해석의 대열에 가담한다. 우리 인간은 그동안 좀 너무 설쳐댔다. 신 앞에서 혹은 자연 앞에서 너무 오만했다. 마치 우리가 세상의 주인인 양,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마구 휘저어 놓은 것이다. 그 바탕엔 과도한 욕망이 있다. 진실을 찾기 위한 ‘가설’이지만, 코로나19의 출현도 그 ‘설쳐댐’의 언저리에서 나온 부산물이다. 이 가설이 만일 논리적-과학적으로 입증된다면, 그 원인의 제거가 문제의 해결이 된다. 신과 자연에 대한 그동안의 오만을 반성하고 자연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무릎이라도 꿇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그 갑-을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하이데거를 비롯한 철학자들은 이러한 자연-인간 관계가 ‘근대’ 이후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고 진단한다.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여기던 인간들이 거기서 떨어져 나와 자연을 ‘대상’으로 ‘객관’으로 설정하면서 대결, 파악, 극복의 상대로 변모시켰다는 것이다. 욕망에 기초한 ‘계산적 사고’가 자연 내지 존재에 대한 철학적-시적 사유를 대체했다는 것이다. 하여 지금도 그것은 추방돼 있거나 혹은 남아 있어도 거의 마비돼 있다.

    그것은 대학에서도 서점에서도 화면에서도 확인된다. 철학과 문학은 지금 천덕꾸러기 신세다.

    그게 코로나19와 무슨 상관? 다수가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무관하지 않다. 조만간 그 메커니즘이 밝혀질 것이다. 나도 지금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때까지 나는 계속 반성문을 쓰라는 경고를 날릴 것이다.

    인간의 좌표를 재설정해야 한다. 인간은 결코 자연의 주인이 아니다. 일단은 신과 자연 앞에서의 겸손과 절제가 답이다.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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