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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집게 좀 주세요- 이주언(시인)

  • 기사입력 : 2022-01-16 20: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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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게를 보면 고마운 마음이 든다. 종일 젖은 옷가지를 붙잡아 주는 빨래집게부터 시작해, 끓는 물 속에서 나물을 데칠 때도 더러운 물건을 집을 때도 집게는 우리의 손을 대신한다. 뜨거움, 더러움,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이 식당에서는 음식을 덜어 먹도록 처음부터 집게를 내주어서 반가웠다. 대부분의 다른 식당에서는 “집게 좀 주세요!”라고 요구를 해야 하고, 그에 대한 답으로 집게가 없다고 하거나 집게를 왜 달라고 하는지 의아해 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모임을 제한당하는 시기인데 아직 집게를 내주지 않는 식당이 더 많다. 이런 때에 공익광고에서라도 홍보를 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제 우리의 식사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한 냄비에 여러 개의 숟가락이 드나들던 모습은 앞접시와 국자를 사용함으로써 사라지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같은 반찬 그릇에 여러 사람의 젓가락이 드나드는 습관도 바꿔야 한다. 반찬 그릇과 사람의 입속을 오가는 젓가락 끝에는 미량의 침이라도 묻어있을 것이다. 물론 한 냄비에 수저를 함께 담궈가면서 음식과 정을 나누던 지난 시절이 더없이 그리운 때다. 그래서인지 이런 소재의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씁쓸하면서도 저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그 중 재미있는 것이 똥과 관련된 에피소드다. 스탈린의 아들이자 러시아 장교인 야코프가 포로수용소에 잡혀 있을 때, 화장실을 더럽게 쓴다고 다른 포로들로부터 모욕을 받고 홧김에 죽음을 택한다. 수용소에서조차 위생이라는 미명 아래, 배설의 생리적 현상이나 본질(?)을 자신으로부터 멀리 떼어놓으려던 영국인 장교들. 밀란 쿤데라는 ‘키치’라는 용어를 형상화하면서 그 영국인 장교들이 지닌 ‘똥을 부정하는 미학적 이상’이 오히려 저속하다고 했다. 이런 일화가 떠오른 것은 위생만을 중시하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이니, 모든 식당에서는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집게를 제공해 주면 좋겠다.

    이주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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