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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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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당신에게 웃을 용기- 심윤경(소설가)

  • 기사입력 : 2022-01-13 20: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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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상 뜻대로 되지 않을지언정 새해의 희망과 다짐을 꼽아 볼 만한 즈음이다. 작년 이 무렵에 쓴 일기를 보니까 다소간 축 처진 어조로, 어쨌거나 희망을 담아서, 다가오는 2021년에는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마음껏 다시 만나고 싶다고 적었다. 외향성인 나에게 사회적 거리두기의 1년은 힘들었던 것이다. 몽골 여행을 가고 싶다고 적은 부분은 지금 와서 다시 보니 그 순진한 바람이 너무 안쓰러울 지경이다.

    다시 1년이 흘러 코로나와 함께한 시간이 3년차에 접어들고 있는 요즘, 해외여행 같이 거창한 것을 섣부르게 바라서는 안된다 치고, 작년에 바랐던 것의 절반만큼이라도 올해는 이룰 수 있을까? 야 오랜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하고 반갑게 안부를 묻는 친구들의 모임들 같은 것 말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올해의 소망으로 꼽았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기 힘들 만큼 내 마음은 위축됐다. 그런 걸 바란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만 해도 어디선가 철없다는 비난의 소리를 들을 것처럼, 나는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됐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한 내 모습이 낯설어 보였다. 그렇다, 마스크를 깜박 잊고 나선 것이다. 동승자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마스크를 챙겨 나왔다. 몇분 안되는 사이에 누가 타기라도 할까 조마조마했다.

    불안해하는 짧은 와중에도 나는 거울에 비친 낯선 내 얼굴을 흥미롭게 보았다. 집 밖에서 이렇게 얼굴을 가리지 않은 상태였던 적이 없어서 중요한 속옷을 입지 않은 것처럼 거북할 지경이었다. 복도나 엘리베이터 같은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 개방된 실외에서도 마스크 착용이 필수라고 느끼는데, 그것은 감염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비난 받을지 모를 가능성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에게 질병보다 더 두려운 것은 사회적 비난이다.

    작년 이 무렵 일기장 속의 나는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의 공격에서 다 같이 보호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언론의 분석기사를 기록하고, 백신의 빠른 개발에 기쁨과 기대를 표시했다. 가족 중에 고령자와 지병을 가진 고위험군이 많았지만 용감하게 제일 먼저 팔뚝을 걷었다. 그렇게 백신 접종률이 충분히 높아졌지만 불행히도 집단면역이라는 이상향은 도래하지 않았다. 반갑게 맞이한 일상회복이 단 몇주를 견디지도 못하고 철회되고 오히려 추가 접종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라는 소식에는 속은 것처럼 멍한 기분이 됐다.

    이미 여러번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지만, 필연적으로 언젠가 우리는 코로나와 공존의 시도를 재개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의 마음엔 불안과 우려가 그득할 것이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할 일이 있다. 우리는 단시간 내 세계 최고 수준의 성인 접종률을 기록했으며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실하게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서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이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가 길에서 만나는 개개인들은 합당한 존중을 받을 만큼 이미 노력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 쉽게 잊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의심과 질책의 눈빛을 보내곤 한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일상의 회복이 해외여행과 떠들썩한 친구들의 만남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정말로 그리워하는 것은 거리나 복도에서 만나는 낯선 얼굴들에게 별다른 경계심을 가지지 않았고 그날 날씨에 대해 낯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 별 뜻 없이 미소를 던질 수도 있었던 날들의 따뜻했던 기억들이다.

    긴 거리두기를 지속하는 새 우리는 바이러스에게 폐를 지키는 대신 마음을 잃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서로의 선택을 비난하거나 경멸하지 않고 존중할 때가 됐다. 바이러스와 긴 싸움을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해나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믿고 따뜻하게 격려하는 웃음 짓는 얼굴들이 필요하다. 그러니 나의 새해 첫 결심은, 어느날 마스크를 벗은 얼굴로 마주친 낯선 당신에게 다시 웃을 준비를 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심윤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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