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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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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노동과 놀이- 김규동(사람대장간 얼렁뚱땅 대표)

  • 기사입력 : 2022-01-03 20: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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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 42년이었다. 정확히 42년하고 27일을 실습 나갔던 첫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맞았다.

    요즘 같은 때 눈칫밥을 먹을 일이지만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자존심을 내려놓고 순전히 버틴 결과다. 덕분에 정년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다. 긴 세월 동안 참 감사했다. 통근버스로 태워주고 때 되면 밥 챙겨주고 달마다 착착 꽂아주는 월급이라는 단맛에 익숙했던 세상살이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날들이었다.

    이제 퇴직한 지 일 년이 지났다. 뭘 할까 고민하지도 무엇을 이뤄볼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냥 지냈다. 생각대로 살지 않고 되는대로 살았다. 직장생활은 아무리 자유로워도 보이지 않는 벽과 팽팽한 경쟁이 존재하는 긴장의 조직이다. 업무성과의 효율을 올리려고 수많은 밀당이 춤추던 울타리를 벗어났으니 그 후련함은 최고였다.

    처음으로 코뚜레가 풀린 채 마음껏 놀았다. 할 일이 없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도돌이표를 무한 반복하며 아무런 일 없는 일상들을 우두커니 즐겼다. 오롯이 내게만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맘 편하게 누렸다.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자고 싶으면 눕고 마음껏 뒹굴며 빈둥거렸다.

    어쭙잖은 버킷리스트 중 전원주택을 꿈꿨는데 다행히 이뤘다. 결혼 후 아홉 번의 이사는 모두 아파트였다. 돈 된다는 소문을 쫓아다니다 꽝도 맞았고 때때로 떡고물도 떨어졌다. 덕분에 후반전을 채워갈 놀이터가 생겼다. 진갑까지 살아온 삶은 직장이란 터전을 바탕으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워서 시집과 장가를 보내며 기쁨을 엮어온 보람의 날들이었다. 그러나 부모로서 해야 할 당연한 몫이었다. 의무와 책임감으로 견뎌낸 거룩한 노동의 보상이었다. 더 큰 대가를 얻으려 밟아 온 길은 적잖이 부끄러웠고 옳은 줄을 알면서도 비켜온 길도 많았다.

    올해 63세인 꼴갑-재미로 만든 말이다-부터는 나답게 살아갈 일만 남았다. 염치가 밥 먹여주지는 않지만 옳은 일을 찾아 떠날 출발선에 섰다. 그 길이 삐뚜름하거나 크게 돌아가도 괜찮다. 더 이상 노동의 결과보다는 놀이의 결실인 재미만 좇을 것이다. 크고 작은 재미를 만들고 쌓아갈 앞날이 쭉 널렸다. 얼렁뚱땅 시작이다. 드디어 놀이다.

    김규동(사람대장간 얼렁뚱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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