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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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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혼돈- 김흥구(행복한요양병원 부이사장)

  • 기사입력 : 2021-12-27 21: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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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 들녘이 황량하다. 병원 너머 북면 들판에 바람이 차다. 가을부터 걷기 시작한 이 길을 환자들도 걷고 나도 걷는다. 고로 나도 환자다. 어설프게 주어진 사회의 경쟁 속에서 순일한 마음의 평정을 잃고, 조급함을 드러내고, 때로 사소한 일에도 격함을 표출하는 정신적 장애가 있다. 무분별한 음주 습관으로 간염도 앓았고, 지병인 당뇨병은 만난 지 꽤 오래된 친구다. 추수를 마친 겨울 들녘은 베어진 벼의 밑동만을 남긴 채, 긴 휴식에 들었다. 차가운 빈들은 그림의 여백처럼 여운을 남기며, 새 봄의 왕성한 활동을 위해 쉬고 있다. ‘휴거헐거 철목개화’다. 쉬고 또 쉬면 쇠 막대기에 꽃이 핀다. 대지도 쉬고 사람도 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쉬어야 한다. 쉰다는 것은 적극적인 생산 활동의 또 다른 뜻이기도 한 것이다.

    코로나 기승은 여전히 이어진다. 이제는 미운 정이 들었고, 지구촌의 한 식구로 자리매김했다. 영국은 향후 5년간 코로나 시대가 계속될 것을 예상했고, 10년 동안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고 예고했다. K 방역이 위태롭다. 이미 임계점에 달했다. 이달 상순에 확진자는 7000명을 넘어섰고, 위중중 환자는 1000명을 넘었다. 사망자도 늘어간다. 수도권의 중증 환자 병상은 이미 90%를 넘나들고, 지방 또한 병상이 여유가 없다. 의료 시스템이 마비를 넘어 붕괴 직전의 조짐을 보인다. 우세 종 등극을 앞둔 오미크론은 스파이크 단백질 돌연변이를 32개 장착한 신형이다. 이분은 기존의 우세 종인 델타 변이보다 확장력의 속도가 단연 뛰어나다. 공기 간 전파가 의심된다니, 문제의 심각성은 배가 된다.

    세기적 사건인 바이러스 시대에도 인간의 욕망은 진화한다. 내년은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를 하는 해이다. 국가를 경영하는 국정운영 최고 책임자와 지역의 발전을 견인하고, 자치단체 살림을 야무지게 살고, 시민에게 봉사하는 단체장을 뽑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물론, 봉사하는 단체장과 헌신하는 지방의원은 만나기가 어렵다. 그분들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소리 없이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벌써 청팀과 홍팀으로 갈라진 선거전은 불이 붙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색하게 전국의 재래시장을 돌며 상대방을 지적하고, 검증이 덜 된 설익은 공약을 남발한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늘어나는 부채에 대한 이자와 그 원금은 별무신경인 듯하고, 표를 향한 포퓰리즘은 거창하다. 청팀의 주자로 소안지사(小眼知事)가 나섰다. 작은 눈에 명석함을 겸비한 안동 양반 출신이다. 땅의 대가로 추앙받는 그는, 대장동에서 단군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다는 자가발전을 명분으로 패권 쟁취에 진력 중이다. 자식 농사와 염문, 가족 불화로 수신과 제가에 약하다는 세간의 평이 있다.

    홍팀의 선수로는 대두총장(大頭總長)이 깃발을 들었다. 큰 머리에 든 것이 많아 보이는 그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칼잡이다. 현 정권의 숱한 핍박과 박해에 맞서, 단기필마로 조자룡 헌 칼 쓰듯 싸운 투사로, 국민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 관악산 자락 신림골에서 기초 수련 9년, 서초동에서 27년을 오직 칼로써, 특수 무예로 무도의 일가를 이루었다. 서투른 메시지 전달로 종종 설화를 빚곤 한다. 당선자는 미지의 땅을 개척하는 탐험가의 지위를 부여받을 것이다. 3D 업종으로 분류되는 당선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든 직업 중 하나로서 취임 후 사흘간은 기쁨을 누릴 것이다.

    하지만 미·중 패권 경쟁 속에 한국의 위상, 북한 문제의 원만한 해법, 코로나 이후의 경제 성장 문제, 정치와 사회의 갈등 속에 국민 통합의 리더십, 저출산·고령화의 심각성, 고갈돼가는 공적 연금 개혁 등 산적한 현안들이 기다리고 있다. 양자의 승패는 이미 명확하다. 적어도 관상학적 측면에서는. 허나, 부질없는 인간사의 사소한 선거에서 천기를 누설할 일은 못 된다. 세월이 쌓이니 세설도 늘어 난다. 또 세밑이다.

    김흥구 (행복한요양병원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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