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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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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ON- 여기 어때] 겨울에 떠나는 진해

잃은 시간을 찾아 시간 여행
벚꽃 뒤 가려진 역사를 보다

  • 기사입력 : 2021-12-23 21: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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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해의 속살을 보려면 벚꽃이 피기 전에 찾으라는 말이 있다. 굳이 박물관을 따로 찾지 않아도 10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한 유적들을 산책하듯 탐방할 수 있는 곳. 진해는 살아있는 근대건축물 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마치 시대극 속에서 튀어나온 듯 오래된 건물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것들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최초 계획도시’라는 화려한 타이틀 뒤로 아픈 역사가 곳곳에 서려 있다.

    ◇최초 계획도시 진해, 아픈 역사 간직…중원광장 일대 100년 넘은 건물 남아

    일본은 러일전쟁(1904~1905) 승리 후 한반도를 본격적인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진해에 군항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1910년 한국인 마을을 강제 철거하고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1922년 군항이 완성되면서 중요 군사 도시로 다시 태어난 진해에 군 병력을 따라 일본인들이 대거 이주했고, 자연스레 시가지가 형성됐다.

    놀라운 사실은 진해 건설 초기인 1910년 이곳에 거주했던 일본인이 35명이었으나 불과 2년 만에 5600여명을 넘어섰다는 것. 당시 진해 인구 10명 중 8명이 일본인이었던 셈이다.

    국내 최초 계획도시 진해의 특징은 세 개의 로터리다. 해군부대 앞에 자리한 북원로터리, 아래쪽 남원로터리, 그리고 진해의 중심인 중원로터리. 100여년 전 세 개의 로터리 주위로 관공서와 상업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섰고, 일부는 현재까지 건재하게 남아 근대문화유산이 됐다.

    ◇전국 최초 ‘충무공 동상’ 진해에…진해군항제, 충무공 추모제가 시초

    북원로터리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이순신 동상./창원시/
    북원로터리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이순신 동상./창원시/

    창원시에서 제안하는 진해 근대문화역사길 투어는 진해구 도천동 해군의 집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는 북원로터리에 이순신 장군 동상(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호)이 있다. 전국 최초로 건립된 충무공 동상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360년이 되는 1952년 4월 13일에 세워졌다. 6·25전쟁 당시 국난 극복을 위해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제작됐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매년 봄 열리는 진해군항제는 이 동상을 세우고 추모제를 지내면서 시작됐다.

    돌아보면 진해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승전의 역사까지 깃든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승리한 합포해전, 안골포해전, 웅포해전이 진해 바다에서 치러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따지고 보면 진해는 일본이 군항도시로 만들기 훨씬 전부터 이미 대단한 군항이나 마찬가지였을 테다.

    ◇예술인 사랑방 ‘흑백다방’ 지금도 운영…‘군항마을 역사관’에서 근대사 한눈에

    진해 구도심의 심장으로 가본다. 근대로 떠나는 여행의 엑기스는 중원로터리 주변에 모여 있다. 진해에서 ‘흑백 다방’하면 모두 안다는 문화공간 흑백(창원시 근대건조물 제4호)이 가장 먼저 보인다. 흑백이라는 이름처럼 흰색 벽과 검정색 창틀의 대비가 돋보이는 이 건물은 1912년에 지어진 목조 건물로 1960~1970년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자 이중섭, 장욱진, 유치환, 김춘수, 서정주 등 걸출한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문화공간 흑백의 창시자인 故유택렬 화백을 대신해 그의 딸이 지난해까지 공연과 전시를 겸하는 미술관으로 운영했으나, 딸이 작고하면서 지금은 운영을 잠시 중단했다.

    예술인들의 사랑방 ‘흑백다방’
    예술인들의 사랑방 ‘흑백다방’

    진해의 100년 전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진해군항마을 거리로 가야 한다. 그중에서도 1912년에 지어진 군항마을역사관은 우리나라 근대사를 대변하는 350여 점의 기록물 등 중요 자료를 잘 보존해 전시했다. 일제강점기 평범한 상점에서 광복 이후 노인정으로 사용되다 2012년 11월 역사관으로 문을 열었다. 1915년 처음 만들어져 진해의 명물로 자리 잡은 ‘진해콩’ 과자도 이곳에서 판매한다.

    역사관에서 나와 복개천을 지나면 해군들의 군복에 마크와 이름표를 달아주는 마크사와 수선집을 만난다. 군항의 도시 진해이기에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상류층 전용 고급 술집 ‘육각집’…이승만·장제스 들른 식당 ‘영해루’

    다시 중원로터리 방향으로 걷다 보면 역사와 맛이 공존하는 옛 건물 두 채가 눈에 띈다. 붉은 지붕의 3층짜리 건물은 육각집(뾰족집)이다. 일제강점기 상류층이 드나드는 고급 요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한식당으로 운영 중이다.

    맞은편에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지인 원해루가 있다. 일제강점기 사진관 겸 시계점으로 쓰이다 광복 후 중국음식점으로 개업했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 포로였던 중공군 출신 장철현씨가 인수하여 영해루로 문을 열었지만 상표 등록을 하지 않아 현재는 ‘원래 우리 가게가 영해루’라는 뜻으로 원해루라는 상호로 운영 중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이 회담을 마치고 식사를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장군의 아들 촬영지 ‘원해루’
    장군의 아들 촬영지 ‘원해루’

    ◇진해 해군 격려한 백범 김구…원형 최대한 보존 ‘선학곰탕’

    남원로터리에 이르면 백범 김구 선생 친필시비(창원시 근대건조물 제2호)가 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김구 선생이 진해를 방문해 해군 장병들을 격려하고 조국 해방을 기뻐하며 남긴 시를 화강암에 새겨 만든 비석이다. 건립 초기 북원로터리에 있었으나 이승만 전 대통령 시절 철거됐다가 4·19의거 이후 지금의 둥지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 인근에도 적산가옥이 즐비하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고급주택과 서민주택이 공존하는 모습은 100여년 전 빈부격차를 실감케 한다.

    대표적인 고급주택은 일제강점기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이 살던 기와집을 곰탕집으로 바꿔 영업 중인 선학곰탕(국가지정 등록문화재 제193호)이다. 1912년에 지었지만 여전히 일본 특유의 얇은 부재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 만큼 옛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서민주택이 모인 장옥거리에는 1910~1912년 사이 지은 2층짜리 일본식 건물 여섯 채가 길게 이어져 있다. 당시 1층은 상가, 2층은 살림집으로 쓰였는데 지금은 도장집, 인쇄집,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남원로터리에 있는 백범 김구 친필 시비
    남원로터리에 있는 백범 김구 친필 시비

    ◇현존 최고(最古) 우체국 ‘진해우체국’…진해 구도심 굽어보는 ‘진해탑’

    진해에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우체국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 있다. 이국적인 외형의 진해우체국(국가사적 제291호)은 1912년 러시아풍으로 건축됐는데, 일찍이 진해에 주둔했던 러시아 공사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애초 지붕에 동으로 된 난간 장식이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재난에 시달린 일본군이 모조리 떼어가 동판 지붕을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건물 내부의 목조 기둥과 현관 및 천장 장식, 오르내리창 등 보존 상태가 뛰어나다. 2000년까지 우체국 업무를 봤고, 지금은 내부를 공개하지 않는다. 영화 ‘클래식’에서 손예진이 전보를 보냈던 곳이다.

    현존 최고(最古) 우체국 ‘진해우체국’
    현존 최고(最古) 우체국 ‘진해우체국’

    이왕 진해까지 왔으니 수고롭더라도 제황산(해발 90m)에 올라보는 건 어떨까. 제황산 정상에 일본이 러일전쟁 전승기념탑을 세웠으나 이를 헐고 1967년 해군 군함을 상징하는 진해탑(창원시 근대건조물 제3호)을 건립했다. 이곳에서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진해 시가지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다. 365개로 구성된 1년 계단을 타고 올라가도 되고, 편하게 모노레일을 이용해도 된다. 다만 계단을 오르면 한 해 동안 병 없이 지낼 수 있다는 풍문이 있다고 하니 가급적 다리 힘 좀 써보자.

    해설사가 동행하는 진해 근대문화역사길 투어에 참가하려면 월요일을 제외한 희망일 3일 전까지 진해구청 문화위생과로 전화(☏055-548-4068) 또는 창원관광 누리집(culture.changwon.go.kr)을 통해 사전 신청하면 된다. 12월 현재 코로나19 특별방역대책으로 백신 접종자가 아니라면 PCR 음성확인서(48시간 이내)가 있어야 투어에 참가할 수 있다.

    이현근 기자 san@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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