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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철학있는 경영과 철학 부재의 ‘조폭국가’- 정성기(경남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21-12-21 19: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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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팬데믹 시대, 거대한 전환의 시대다. 공부해야 할 게 태산 같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게 철학 공부다.

    경제학은 경영학과 달리 그 대상이 시장만이 아니라, 정부-공공 부문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애덤스미스부터 경제학을 정치 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 불렀다. 스미스는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을 낸 철학자였다는 것이 최근에 재조명되고 있다. 그런데 21세기 한국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현실은 애덤 스미스도 답하기 쉽지 않은 경제 철학적, 정치 철학적 문제로 가득 차 있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요즘 많은 한국인들이 묻는다. 정치는 저 모양인데 어떻게 이 나라가 망하지 않고 선진국 소리를 듣느냐고. 그리고 답한다. 전 세계를 누비며 ‘K-제조업’ 얘기를 듣는 이 나라 경제 현장의 기업 사람들, K-팝 가수를 비롯해서 국악인들까지 혼신의 힘으로 노력해 온 문화인들 덕분이라고. 정치 뉴스를 외면할 수 있어도 불량품 정치가 주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 그 정치를 정색하고 보면 그 속에 이미 우리가 제기해 온 철학적, 존재론적 이슈가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이게 나라냐’는 물음이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도처에서 국가 공권력을 두고 ‘해수부 마피아’(해피아)부터 정피아, 행피아, 법피아라 불렀다. 저들이 마피아 조직이지, 국가 공권력이냐 하는 처절한 외침이었다.

    정치-공무는 공공 서비스다. 그 ‘소비자’는 국내 국민이다. 언제나 독점 사업이다. 이에 비해 기업 사람들은, 심지어 농민들도 살기 위해서 좁은 국내 시장 넘어 국제무대로 나가야 하고, 국내 시장도 이미 글로벌 경쟁 무대다. 사회주의 진영 붕괴 이후 본격화된 세계화 이후 특히 그랬다. 그 무렵 노사분규도 기업 사활을 좌우하는 문제였다. 그 위기 속에서 - 일본은 엔고 속에서 흥청망청하며 ‘잃어버린 10년’에 접어들 때 - 문자 그대로 ‘생존’을 위해 상당수 대기업 그룹부터 경영자들은 대학의 웬만한 철학 교수 이상으로, 기업의 존재 이유, 기업의 목적 등의 철학적 주제로 고민했다.

    창원공단의 대표적인 전자 회사 사장은 〈붉은 신호면 선다〉라는 책에서 ‘지켜야 할 룰은 반드시 지킨다는 경영 철학’을 수준 높은 유가 철학 담론에 녹여냈다. 그 회사의 그룹 회장은 〈오직 이 길 밖에 없다〉는 비장한 제목의 책을 냈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투자자 이윤이 아니라 소비자 만족이라는 가치 창조다. 인간 존중이 기본이다.’ 이런 주장은 상식에 가깝지만 이미 기존 경제학, 경영학 원론의 철학적 기반을 무너뜨리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 길을 가면 살 수 있다는 것을 그 회사는 내부에서나 밖에서 실천으로 증명했다. 재벌 그룹 중에서 최고 수준의 노사 관계-생산관계에 기초해 개발을 거듭한 신제품들은 국내의 일본 전자 회사를 넘어 세계 탑 수준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비슷한 회사들이 경남에 많다.

    이 나라 정치와 국가 사무는 어떤가? 메이저 정당들에 마산 어시장 상인들의 상도의나 조폭들 의리 정도는 있는가? 이름뿐인 보수나 진보 정당들에 시정잡배들보다 못한 양상도 여전히 흔하다. 친여 언론도 인정하는 심각한 정치 방역, 나랏돈 퍼주기, 망가진 법치와 내로남불 사법 사무 보며 ‘이게 나라인가’ 소리가 다시 나온 지 오래다.

    대선 정국이 요란하다. 누가, 어느 정당이 헌정 질서를 지키며, 그나마 국민적 존재 이유를 증명할 것인가? 애덤 스미스는 ‘인간 내면의 심판자’, 인간 ‘양심’을 ‘인간 내면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 했다. 한국의 대표적 현대 철학자로 평가받는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다. 부실한 선생 정신 차리게 하는 게 학생이고, 위정자 정신 차리게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국민 몫이다. 연말, 겨울은 살기 위한 철학하기에 더 좋은 시즌이다.

    정성기(경남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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