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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설 즈음해서- 박태현(시인)

  • 기사입력 : 2021-12-16 2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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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임인년(壬寅年)은 육십 간지(干支)의 39번째 해로, 임(壬)은 흑(黑)이므로 ‘검은 호랑이띠’ 해이다. 농촌에서는 절기에 맞춰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기에 음력설을 쇤다.

    설이 되기 보름 전부터 콩나물을 기른다. 장독 뚜껑을 방바닥에 놓고 쳇다리를 걸쳐, 그 위에 콩나물시루를 얹어 표주박으로 시시로 물을 부어주면, 쪼르르~쪼르르~ 안방에서도 개울 물소리가 났다. 굽은 찔레나무 넝쿨 아래로 흐르던 냇물은 흐르던 그대로 꽁꽁 얼었는데, 얼지 않는 그 물소리가 나는 좋았다.

    멀리 방앗간에 가셔서 아버지가 쌀을 찧어다 놓았다. 파닥거리며 떠는 문풍지를 떼 내고 새 문종이로 다시 발랐다. 초가지붕에 닭들이 널브러진 마당도 훤하게 쓸었다. 어머니는 그을음이 새까맣게 올라앉은 부엌 천장과 살강을 말끔하게 청소해놓고, 볕이 좋은 마당 한쪽에 앉아 볏짚으로 햇빛이 미끄러지도록 놋그릇을 닦아 놓았다. 그리고 대목장에 가셔서 제수(祭需)와 우리 6남매 설빔을 사 오셨다.

    잘 사는 집 애들은 새 옷에 운동화도 사 놓았다지만, 나는 검정 고무신과 면양말 한 켤레가 설빔이었다. 그걸 저녁마다 신었다 벗었다 하느라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 시절엔 삼시 세끼 보리밥이라도 제때 먹을 수 있는 집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양말 한 켤레라도 신을 수 있었던 아이들은 설날이 더없이 기다려졌다.

    설 사나흘 전, 가으내 타작한 메주콩을 물에 불려 맷돌에 갈아서 짜낸 콩 물을 가마솥에 넣어 끓인다. 내가 쪼그리고 앉아서 불을 때면, 콩대 타는 딱! 딱! 딱! 소리가 동네 아이들이 아궁이 속에서 딱총 놀이하는 것 같았다. 변덕 많던 살림살이가 울혈 진 시름에 엉키듯, 콩물에 간수를 넣으면 몽글몽글 엉기어 고소한 두부가 되었다.

    차례 때 쓸 막걸리도 빚었다. 통밀을 굵게 갈아 띄운 누룩과 아주 되게 지어져 고들고들한 고두밥을 섞어 독에 넣고, 이불을 덮어 아랫목에 며칠 놔두면 막걸리가 되는데, 이 막걸리가 설날 아침 차례상 술잔을 남실남실 채운다.

    이윽고 그믐날 밤, 잠자는 사람은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섣달 그믐밤, 집안에 촛불을 사방 켜놓았다. 호롱불을 켜다가 촛불을 켜놓으니, 별빛밖에 없는 그믐밤이 대낮같이 환했다. 촛불들이 바람결에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흰 사기그릇에 쌀을 가득 담고 그 한가운데 초를 세운 불춤 ~ ! 그 불춤이 마당굿처럼 가히 환상적이었다. 식구들 건강을 위해 의식을 치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설날 차례를 지내기 전, 어머니가 삶은 달걀 한 개씩을 식구들에게 건네주었다. 장독대에 내놓고 서리 맞힌 차가운 달걀, 설날 맨 처음 이걸 먹으면 재액을 막아준다는 구전 때문이었으리라.

    이제 초가지붕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옛사람들도 사라져, 그 시절의 아름답던 모습이 깊은 세월의 늪에 수몰된 지도 오래되었다. 가마솥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때던, 그 조그만 아이는 콩알이 다 빠져나간 마른 콩대가 되어, 희미해진 추억을 뭉근한 정신의 불로 데우고 앉아 있다.

    기쁨도, 슬픔도 세월이 데려오고 데려가는 것만 같다. 그러나 덧없다고 말하지 않겠다. 어차피 신축년은 지나가고 주름살은 깊어가지만, 임인년에도 찔레나무는 또, 초록을 무성하게 돋우고 희디흰 찔레꽃을 피워낼 테니.

    박태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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