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과거신문보기   |  
2022년 01월 28일 (금)
전체메뉴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32) 함양 상림 사운정

벌들이 꽃잎에 앉듯이 시들이 정자 주변에 자리를 틉니다

  • 기사입력 : 2021-12-08 08:04:55
  •   

  • 시비(是非)

    고운(孤雲) 선생은 시비소리가 두려워 흐르는 물로 산을 둘러쳤다는데* 나는 물 옮길 힘이 없으니 당신은 옳고 나는 틀렸습니다 실은 예서 가야산(伽倻山)은 조금 먼데요 당신은 멀고 가까움이 뭔지에 대해 먼저 물어야 한다며 내비게이션으로 거리를 탐색합니다

    우리는 똑바른 기둥과 쭉 뻗은 대들보와 곱게 펼친 처마와, 당나라 빈공과(賓貢科)와, 침상에 내려앉은 황소(黃巢)와, 명운을 다한 신라에 대해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세상사 꿰뚫어본 고운이라도 당신의 심사(心事)가 만 리를 달려** 천 년을 흘러 예까지 닿을 줄 몰랐겠지요

    오는 길에 금돼지를 샀었지요 당신은 저금통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했지만 난 단지 그 배를 갈라 제(祭)를 지내면 그의 영혼이 내 펜을 바로 세워 줄까 싶었어요

    포동포동 살이 오른 배를 가만 바라보다 이내 칼을 거둡니다 쭉 뻗은 나무 사이로 들락거리던 시(詩)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니까요 벌들이 꽃잎에 앉듯이 시들이 정자 주변에 자리를 틉니다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외롭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꿀을 따먹는 사람은 벌에게 인사하지 않지요

    당신도 나도 아무 말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선 아무도 옳지 않고 누구도 그르지 않습니다

    *〈제가야산독서당(최치원)〉의 변용

    첩첩한 돌 사이에 미친 듯이 내뿜어 겹겹 봉우리에 울리니/ 사람 소리 지척에도 분간하기 어렵네/ 항상 시비 소리 귀에 이를까 두려워/ 일부러 흐르는 물로 하여금 온 산을 둘러싸게 했네[狂噴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추야우중(최치원)〉의 변용

    쓸쓸한 가을바람에 괴로워 읊조린다/ 이 세상 뉘라서 내 마음을 알아주리/ 삼경 깊은 밤 창밖에 비는 내리고/ 등불 앞에 초조한 심사는 만리를 달리네[秋風唯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함양 상림 가운데 위치한 사운정(思雲亭)은 고종황제 46년(1906) 경남 유림(儒林)들이 세운 정자이다. 처음에는 모현정(慕賢亭)이라 불렀으나 후에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을 추모한다는 뜻에서 사운정(思雲亭)이라 불렀다. 예전에는 학생들의 백일장이나 사진전, 전국 규모의 시조경창대회가 열리던 문화공간이자 천령문화제 때 제를 지내던 제의공간이었으나, 문화예술회관이 들어선 후에는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더위를 식히는 휴식터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시·글= 이강휘 시인, 사진= 김관수 사진작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