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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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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권분(勸分) - 이상권 (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1-12-03 08: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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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서운 삭풍의 위세에 대지도 한껏 움츠렸다. 북풍에 몸을 내맡긴 까치밥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위태위태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있다. 칼바람에 얼어붙은 선홍빛은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홍시 하나라도 남겨 미물의 주린 배를 채우려는 배려의 마음이다. 엄동설한은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겐 더없이 힘든 시간이다. 옷깃을 파고들어 살을 에는 냉기는 가슴을 후비는 서러움으로 꽂힌다.

    ▼권분(勸分)은 ‘나누고 베풀어 살아가기를 권장하는 일’이다. 조선 시대 흉년이 들면 부유층에게 곡식이나 재물을 나눠 가난한 서민을 구제하도록 권장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진황(賑荒)편에 나라에 기근이 들었을 때 6가지 구제책 가운데 하나로 중국 주나라 때 시행한 권분 도입을 주장했다. 강제가 아닌 스스로 나누어 베풀도록 독려했다.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실천이다.

    ▼최근 김해시에 익명의 기업인이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달라며 1억원 상당의 생필품을 기부했다. 10년째 이어지는 선행이다. 그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의미”라고 했다. 지난 7월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자를 밝히지 않은 성금이 전달됐다. 2017년부터 총 4억3000여만원을 전달했다고 한다. 각박한 세상에 그나마 공존의 의미를 일깨우는 온정은 남아있다.

    ▼가난한 여인이 구걸한 돈으로 공양한 등불이 마지막까지 꺼지지 않고 홀로 불을 밝혔다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불교 고사가 있다. 물질의 많고 적음보다는 정성이 담긴 마음이 중요하다는 교훈이다. ‘봄을 보내고 여름 보내고/가을까지 다 보내놓고/초겨울 다 되어서야/나뭇가지/빈 나뭇가지 위에/걸어놓는 말/사랑해요 사랑했어요/그래 나도 사랑했단다/입술 시린 찬바람이/듣고 갔을까/그래서 붉은 열매 두엇/거기에 남겨두었을까.’(나태주. 까치밥) 배려는 사랑이다. 나눔은 함께 살아가는 지혜다.

    이상권 기자 s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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