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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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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문화의 향기] (19) 창원 바인딩 갤러리

전시 틀 깨고 작품과 관객 틈 엮다

  • 기사입력 : 2021-11-30 21: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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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판도 지키는 사람도 없다. 심지어 작품명도 없다. 전시장 내부는 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을 사용한다. 오직 그림만 걸려 있을 뿐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선입관 없이 자기 나름대로 작품을 감상하게 하려는 의도다.

    무인갤러리 바인딩(BINDING) 정진경 대표는 경남도립미술관 예술강좌를 통해 알게 된 독일 인젤 홈브로이히(Museum Insel Hombroich) 미술관을 잊을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예술을 어떤 정체성으로 이끌어가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였기에, 미술관의 취지가 유난히 와 닿았다. 작품과 관객의 간극을 메우기 적합한 문화공간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바인딩 갤러리 정진경 대표.
    바인딩 갤러리 정진경 대표.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의 취지는 사람들에게 관람에 대한 자율권을 주는 거예요. 관람 예의를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거죠. 이런 전시공간을 시도해봐야지 결심했지만 걱정되더라고요. ‘작품이 상하면 어쩌지’ ‘작가를 어떻게 설득하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막상 문을 여니, 관람객들이 더 조심할 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오히려 이 공간을 신선하게 바라봐주시더라고요. 관람 예절과 문화 의식은 제재 속에서 배워지기보다 자발적 인식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바인딩 갤러리’ 전경. 간판도 사람도 없는 무인갤러리다.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바인딩 갤러리’ 전경. 간판도 사람도 없는 무인갤러리다.

    간판도 없는 ‘무인갤러리’ 오픈
    사람들에게 관람 자율권·문화 의식 선사하는
    독일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 취지 와닿아
    사람 없이 관람객 혼자만의 사유공간서
    오롯이 작품 감상할 수 있는 전시공간 시도

    만질 수 있는 전시·협업… 새로운 시도
    만지거나 보는 것 자유로운 작품 우선 섭외
    건축가와 ‘가상공간 건축’ 메타버스 프로젝트
    기계부품 악기로 활용한 전시형 연주회 ‘신선’
    작가 40명과 다양한 작업형식 기획전 준비도

    작가와 관람객, 공간을 엮다
    바인딩은 ‘엮는다’ 의미 bind 에서 만들어져
    작가들에겐 재미있고 실험적인 공간으로
    문화와 예술 엮고 사람 마음까지 엮어서
    관람객들과 즐거움 공유하는 공간되길 바라

    바인딩(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48-9)은 창원 가로수길 주택 골목길, 20평 남짓한 반 지하에 지난 4월 문 열었다. 갤러리 공간은 작가가 기존 사용하던 2개의 작업실 중 하나를 사용했다. 1970년대 말 지어진 건물로, 전쟁 피신용 지하벙커로 활용되던 공간이다. 내벽이 튼튼하고 습기가 차지 않아, 작품을 보관하기에 적당하다고.

    “이 골목이 폐쇄된 공간이라 밤 되면 정말 어두워요. 경찰차도 자주 왔다 갔다 할 정도니까요. 오후 8시까지 갤러리를 운영하기 때문에 항상 불을 켜놓거든요. 처음엔 이웃들에게 양해를 구했는데, 오히려 골목길이 덜 무서워 좋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민원이 들어온 적 없어요.”

    정 대표의 본업은 작가다. 회화부터 설치미술과 영상까지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작품을 전시할 때마다 안전에 대한 제재 상황이 많아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다고. ‘만질 수 있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게 바인딩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렇다고 무조건 만질 수 있는 체험형 전시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무인갤러리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만지거나 보는 것이 자유로운 작품을 우선 섭외하는 경향이 있긴 해요. 이 과정을 겪으면서, 관람객이 작업을 두려워하기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작품을 감상한다는 점을 발견했어요. 관객과 작품의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인거죠. 유리나 도자 같은 파손이 쉬운 작품을 피하는 것은 사실이에요. 아이들의 경우 눈보다 손이 훨씬 빠르거든요. 이런 재료들도 안전하게 설치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에요. 시간은 걸리겠지만 서로의 신뢰가 쌓여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창원 바인딩 갤러리에서 개최됐던 전시들./바인딩 갤러리/
    창원 바인딩 갤러리에서 개최됐던 전시들./바인딩 갤러리/
    창원 바인딩 갤러리에서 개최됐던 전시들./바인딩 갤러리/
    창원 바인딩 갤러리에서 개최됐던 전시들./바인딩 갤러리/

    이러한 경험 덕분에 ‘사람을 끝까지 두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됐다고. 관람객 혼자만의 사유 공간에서 오롯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바인딩은 현재 연 세 차례 기획전을 열고 있다. 전시 기간은 두 달. 기존 갤러리의 전시 기간이 준비 기간에 비해 짧아 아쉬운 점이 많았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가는 누구일까.

    “김근재 작가는 바인딩의 정체성을 잡는 데 도움 주신 분이에요. 시간을 시각화하는 작가인데, 쇠라는 차갑고 날카로운 물성을 따뜻하게 해석한다는 점이 좋았어요. 서툰 준비에도 조건 없이 첫 전시에 응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최근 도내 여성 위인 8명을 일러스트로 그린 노경무·팽샛별 작가의 전시도 감동적이었어요. 관람객들의 반응이 진정성 넘쳤다고 해야 할까요. 방명록에 장문의 편지글을 남긴 관람객들이 유독 많았어요. 예술이 주는 울림이 크다는 걸 새삼 느꼈죠.”

    바인딩은 전시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와의 협업을 다각도로 시도하고 있다. ‘2021 경남건축문화제’서 경남대 신용주 건축과 교수, 4명의 건축가(고창호·손명준·신건수·정종태)와 손잡고 김해문화의전당서 ‘가상공간 건축’을 주제로 한 메타버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무엇보다 지난달 열린 ‘인스툴(INSTOOL) : 악기의 도구화’는 신선한 도전이었다. 이는 거문고 연주자 신근영 대표가 주축이 된 ‘더탄’이 선보이는 전시형 연주회. 공연 장소를 갤러리로 옮겨왔다. 공장 내 기계부품을 악기로 활용, 이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제작해 전시하는 방식이다. 신근영 대표는 “현장 노동이 무대서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움직임이 때로는 악기로, 때로는 도구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바인딩과 인연을 맺은 40명의 작가들과 올해 마지막 기획전을 준비 중이다. 2022년 호랑이 해를 맞아 오는 23일부터 내년 4월 중순까지 ‘잘(Will Live Well)’ 주제로 전시를 선보인다. ‘잘 살고 싶다’는 공통된 마음을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 형식을 빌려 표현한다.

    정진경 대표가 전시형 연주회 ‘인스툴(INSTOOL) : 악기의 도구화’ 를 준비하고 있다.
    정진경 대표가 전시형 연주회 ‘인스툴(INSTOOL) : 악기의 도구화’ 를 준비하고 있다.
    정진경 대표가 전시형 연주회 ‘인스툴(INSTOOL) : 악기의 도구화’ 를 준비하고 있다.
    정진경 대표가 전시형 연주회 ‘인스툴(INSTOOL) : 악기의 도구화’ 를 준비하고 있다.
    ‘인스툴(INSTOOL) : 악기의 도구화’ 공연 모습./바인딩 갤러리/
    ‘인스툴(INSTOOL) : 악기의 도구화’ 공연 모습./바인딩 갤러리/

    “바인딩은 익숙함을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는 문화공간이에요. 저도 작업하는 사람이기에, 혼자만의 딜레마에 빠질 때가 많아요. 그 어려움은 스스로 깨기 어려워요. 작가들과 어떤 실험을 한다거나 자극을 교류하다 보면 조금은 재밌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 즐거움을 관람객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아직 방향성에 대한 변화는 없어요. 이 공간을 진솔되게 꾸려나가려 합니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건, 현장에서 작품을 보는 것과 가상공간에서 작품을 경험하는 건 달라요. 대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바인딩을 메타버스 갤러리로 확장해보고 싶어요. 예술의 이면을 무궁무진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정 대표는 마지막으로 “바인딩은 ‘엮는다’라는 의미의 단어 ‘바인드(bind)’에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기엔 작가와 관람객을 엮고, 공간을 엮는다는 뜻이 통념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이곳이 작가들에게 ‘재미있고 실험적인’ 공간이 되길 꿈꾼다. 바인딩이 문화와 예술을 엮고, 나아가 사람의 마음까지 엮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본다.

    글= 주재옥 기자 jjo5480@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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