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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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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바르게 살기에도 생은 짧다- 김시탁(시인)

  • 기사입력 : 2021-11-17 20: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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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삶은 예행연습 없이 바로 본 게임에 돌입하다 보니 언제든 크고 작은 실패의 확률을 안고 산다.

    자의든 타의든 간 길은 되돌아오기 쉽지 않고 돌아와도 물리적 시간의 낭비와 희생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려고 신중을 기하지만 아무리 든든한 돌다리도 넘어지는 사람은 지켜주지 못한다. 잘못 살았다 하여 살아온 시간을 물릴 수도 없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물건처럼 반품할 수도 없다. 그러니 좋은 길을 택해 안전하고 바르게 잘 가야 한다. 세상에는 어디를 어떻게 가든 다 길이 있다. 나무는 하늘로 오르는 길이 있고 새들은 창공을 나는 길이 있다. 담장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는 햇살 앉는 쪽으로 정한 길이 있고 바닥을 기는 넝쿨도 타고 오를 작대기라도 꽂아놓은 쪽으로 기어가니 그 길이 제 길인 것이다. 미물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인간이 길이 없으랴. 길을 가다 보면 장애물을 만나 역경을 겪기도 하지만 또 벗어나면 한숨 돌리고 쉬어가는 그늘도 있고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샘물도 있다. 삶은 진정 견딜 만큼의 고통과 시련이 따른다는데 더러는 그 과정을 이기지 못하고 중도에 생을 포기하는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엄연한 반칙이므로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어떻게 가든 제 길을 가야 하지만 그 길이 영원하지 않듯 우리네 인생도 영원하지 않다. 어쩌면 아주 짧은 길을 짧은 세월과 동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만큼 그 과정도 중요하다.

    그런데도 요즘 일부 사람들은 과정을 무시한다. 힘 있는 자는 힘없는 자를 밟고 가고 약점을 건드린다. 제 길만이 옳은지 주변은 무시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오물을 버리고 침을 함부로 뱉으며 발길에 걸리는 것들은 모조리 걷어차며 가는데 참으로 당돌하고 저돌적이다. 직강은 빨리 바다에 닿지만 바다가 기다리는 건 귀때기를 후려치는 파도뿐이다. 강바닥을 쓰다듬고 야생화의 향기에 취하며 물풀을 만지다가 물달개비 이파리 위에 알을 낳는 밀잠자리를 보면서 쉬엄쉬엄 흘러가는 곡강에 어찌 비유할 수 있으랴. 조금 여유를 가지고 자기 영혼이라도 따라올 수 있을 속도로 가는 길이 슬기롭다. 얼른 가서 주변을 놓치고 후회하거나 돌아오지 말고 천천히 볼 것은 보고 만질 것을 만지며 가면 어떨까. 말 걸고 잔 돌리고 노래하고 사진 찍고 하늘도 한 번 올려다보며 가는 것이다. 삶을 태운 생의 열차는 따로 정해놓은 시간이 없어서 언제든 올라타면 시동이 걸린다. 아무리 급해도 새치기하지 말고 남의 길 방해하거나 빼앗지 말고 욕하지 말고 뒤통수치지 말고 남의 가슴에 못 박지 말고 가자. 그렇게 가면 머지않아 가족끼리 식탁에 앉아 신문 보고 TV 보면서도 욕 나오지 않고 웃음이 나오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세치 혀에 국민이 더 이상 우롱 당하지 않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 없는 세상 그립지 않은가. 그 세상에서는 개가 도둑을 보고 짖을 뿐 똥 묻은 개가 먼지 묻은 개를 보고 짖지는 않을 것이디. 거짓말하지 말고 바르게 살기에도 짧은 생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가는 길 잠시 멈추고 점검하자. 구정물이 빠지면 맹물에 씻어놓은 바둑알처럼 반들거리는 세상은 반드시 온다. 그 세상에 볼이라도 한 번 비벼봤으면 좋겠다.

    김시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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