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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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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너무 시끄러운 고독-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 기사입력 : 2021-11-14 20: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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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2년 8월 29일, 미국의 한 야외 공연장에서 열린 피아노 콘서트 장에 4분 33초의 정적이 흘렀다.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 등장한 피아니스트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 Jr, 1912~1992)는 기대감에 가득 찬 청중들에게 악보를 바라만 보면서 피아노 뚜껑을 열고 닫기만을 되풀이했다.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자 청중들은 연주를 하지 않는 존 케이지를 향해 “도대체 왜 연주를 안 하는 거야?”, “어디가 아픈 거야?” 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묵묵부답이던 존 케이지는 정확히 4분 33초가 되자 청중에게 인사하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이것이 존 케이지가 작곡한 음표가 하나도 없는 연주곡 ‘4분 33초’다. 그는 텅 빈 악보에 바로 청중의 소리를 담아냈는데, 그것도 음악이라는 것이다.

    1936년 시애틀에서 서양 선불교의 선각자인 낸시 윌슨 로스의 강연 ‘선불교와 다다이즘’을 듣게 된 케이지는 선(禪) 사상에 눈을 뜨고, 뉴욕으로 떠나 신화 학자 조지프 캠벨에게서 동양 예술과 철학을 소개받고 음악관이 뒤바뀐다. 그리고 1949년 뉴욕 예술가 클럽에서 ‘무(無)에 관한 강연’을, 1년 후 ‘유(有)에 관한 강연’을 한다. “나는 할 말이 없고 할 말이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으며 이것이 내게 필요한 시다.”(‘무에 관한 강연’ 중) 1950년 갓 출간된 ‘주역’의 최초 영문 판을 접한 케이지는 음 높이와 소리를 모두 배제하고, 주역으로 음 길이 만을 결정해 곡을 쓴 것이 바로 ‘4분 33초’다. ‘4분 33초’는 ‘쉼표’가 있어야 ‘음표’가 힘을 발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물리적 울림에 더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중요성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법정 스님이 강조한 ‘무소유’는 결핍과 무지와는 엄연히 다르다. ‘무소유’는 오히려 ‘소유’에 가깝다. 쓰레기 같은 것은 과감하게 버리되, 당연히 가져야만 할 것은 목숨을 걸더라도 당당하게 취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취할지, 어떤 것을 버려야 할지가 어렵다. 이는 지혜와 내공의 바탕이 있어야 가능하다. 단순하고 얄팍한 지식보다는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비판과 고뇌의 산물이 있어야 한다.

    단테는 ‘신곡’(1321)에서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로 예약되어 있다”고 일갈했다. 베다, 우파니샤드와 함께 인도의 3대 경전 중 하나로서 인도의 정신을 대변하는 최고의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에서도 “행동하라!”고 외친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참된 지식인이리라!

    오늘날 우리 사회는 너무 시끄럽다. 고관대작일수록 그들 주위가 더 시끄럽고 매체나 SNS 등을 통해 반강제적으로 그들의 파행을 접하게 되는 국민들의 혼란은 커져만 간다. 단연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의 IT 인프라는 이를 부추긴다. 국토가 좁은 데다 단일 민족이고, 게다가 한글의 편리성 때문에 더 전파력이 있고 더 많이 중독된다. 가히 ‘초 연결 사회’가 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모두 갖춘 멋진(?)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인터넷, 스마트폰, SNS 등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한 폐해 자체 만도 적지 않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신체적으로 이상 증후가 나타난다. 뭘 하든지 중간중간 문자, 카톡, BAND 메시지를 확인하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쓸데없이 클릭한다. 심지어 포모(FOMO)현상, 일명 ‘고립 공포증’으로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관계 단절을 두려워하는 증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시간, 고작 44초!’라는 실험 결과도 있다. 이에 더해 소위 위정자들이나 사회의 리더 격인 사람들이 저지르는 수많은 작태까지 더해져 혼란이 극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떠다니는 손쉬운 정보에 흔들리기보다는 지혜를 무기로 취사선택하는 능력이 필수인 시대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는 소설의 ‘반어적’ 제목이 떠오른다.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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