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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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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문화의 향기] (17) 진선미 아트해빗

예술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열린 문화쉼터
전직 교사·아트디렉터 등 운영진 8명
재능 있는 아이들 위한 징검다리 역할

  • 기사입력 : 2021-11-02 21: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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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이들은 원대한 꿈을 품고 있었다. 경남이 가지고 있는 예술 가치를 브랜드로 만들어보겠다는 결심이다. 그 용기는 옻칠을 지켜내고 옻칠 회화라는 예술 장르를 개척한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으로부터 비롯됐다. 여전히 전승되고 있는 옻칠문화처럼, 김성수 관장의 뜻을 지역민들과 실현해보자는 의미에서 새로운 문화공간을 꾸렸다. 진선미 아트해빗은 1년의 준비 끝에 탄생됐다.

    진선미 아트해빗(창원시 마산합포구 무학로 200)은 마산 만날재 고개를 넘어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미래 스크린 골프 상호가 붙은 건물 아래 층층이 쌓인 돌계단을 내려가면, 붉은 대문의 소담한 주택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일 문을 연 진선미 아트해빗 내부 모습. 정현숙 작가의 닥종이 작품과 정은주 작가의 수채화가 전시돼 있다.
    지난 1일 문을 연 진선미 아트해빗 내부 모습. 정현숙 작가의 닥종이 작품과 정은주 작가의 수채화가 전시돼 있다.

    “우리 민족은 한국전쟁 당시에도 통영에 경남도립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를 설립해 옻칠문화를 계승시키려는 노력을 했어요. 이순신 장군은 12공방을 설치해 군수조달품인 칼집에 옻을 입혔고, 전란 속에서도 전통문화를 이어가게 했습니다. 이는 예술혼을 유지시키기 위한 몸부림이었어요. 옻칠문화로 시작된 이 운동이 진선미 아트해빗 공간에서 실현되길 바라봅니다.”

    진선미 아트해빗은 원래 익명을 전제로 한 모임공간이었다. 하지만 재능을 선보일 무대가 없는 이들을 위해, 이름을 내세울 공간을 찾아주자는 회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이후 우계명 대표를 필두로, 전직 교사·연구원·아트 디렉터·자영업자 등 8명의 운영진이 구성됐다. 아트는 예술을, 해빗은 영어로 습관이자 경상도 방언으로 햇빛을 뜻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 덕목인 진선미를 더해 ‘아름다운 예술적 습관을 햇빛처럼 나누자’는 의미를 담았다. 기성작가들이 아닌 아마추어 작가들을 키워보자는 취지다.

    지난 1일 문을 연 진선미 아트해빗 내부
    지난 1일 문을 연 진선미 아트해빗 내부

    우 대표는 경남교육청 장학사를 비롯해 전 마산중학교 교장으로 40여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예술을 업으로 하는 가족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문화와 가까워졌다. 하지만 문화를 누리기만 할 뿐, 예술적 욕구를 표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학교엔 축제가 많잖아요. 끼 넘치는 학생들이 무대를 경험하면,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더라고요. 소질을 발휘할 수 있는 이런 공간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각박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문화예술이 활성화되는 길밖에 없더라고요.”

    진선미 아트해빗은 지난 1일 첫걸음을 내디뎠다. 예술에 재능 있는 저소득층 학생들과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기 위해서다. 공간이 없어 공연과 전시를 열지 못하는 작가들에게도 문이 열려 있다. 문화공간이기 보다 소통공간으로 자리 잡히길 바란다고. 이 공간을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이 후원자와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인의 아이가 그린 아버지의 초상화를 봤는데, 초등학생이 그린 거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생동감이 느껴졌어요. 이런 아이들에게 재능을 키워낼 수 있는 기회의 제공자가 생긴다면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내일의 작가를 한 명씩 발굴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곳에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와서 자신을 표현하는 공간으로 이용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진선미 아트해빗은 순수 비영리 목적으로 차려진 문화 쉼터다. 운영진 한 명이 무상 제공한 주거공간 내 조성돼 100% 운영진들의 사비로 운영된다. 워킹갤러리 신인애 관장도 예술 인맥을 이어주는 후원자로 동참했다. 우 대표가 지난여름 워킹갤러리서 열린 중광스님 소장전이 비영리로 진행되는 것을 보고, 진선미 아트해빗의 방향성과 일치한다고 생각해 손을 내밀었다.

    공간의 개방을 알리는 신호탄은 전시다. 일반인·장애인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교육을 펼치는 한지공예 정현숙·수채화 정은주 두 자매 작가가 참여했다. 정은주 작가는 성산미술대전 대상을, 정현숙 작가는 전국한지공예축제·경남공예대전 특선을 받을 만큼 실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20년 넘는 작품 활동에도, 이름을 건 개인전은 처음이다. 전시는 11월 한 달간 열린다.

    정은주 작가는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걸 신인애 관장님 통해 알게 됐다. 언니나 저나 작품을 알리는 데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데, 공간에 대한 의미를 알고 나서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술 재능은 엄마에게 물려받았다. 현재 엄마가 치매와 파킨슨병으로 편찮으신데, 기억을 잃기 전 우리가 하는 전시를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가족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지만, 예술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다. 정은주 작가는 수채화로 도시 풍경을 그리는 반면, 정현숙 작가는 유년시절 추억을 닥종이 인형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정현숙 작가는 “언젠가 ‘동생과 전시를 같이 하면 좋겠다’고 마음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소원이 이뤄져 꿈만 같다. 지금까지 과거를 표현하는 방식에 머물렀다면, 이번 전시를 계기로 현대적 부분이 가미된 새로운 작품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 대표는 이곳을 재능 있는 아이들에겐 길을 터주는 공간으로, 작가들에겐 재능을 기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꿀 예정이다. 초창기인 만큼, 문화적 토대를 천천히 쌓아올릴 계획이라고.

    “재능 기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전시와 공연 이외 프로그램도 구상해보려 합니다. 마음 속 매듭을 풀고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도 좋습니다.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 듣는 공간이어도 좋고요. 도심에서 악기를 연주하면 층간 소음을 야기해 갈등이 초래되지만, 이곳에선 작은 음악회를 열 수 있어요. 아직 다듬어 지지 않은 공간이기에 더 접근하기 수월할 겁니다.”

    그는 진선미 아트해빗이 어제와 오늘, 내일이 공존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길 꿈꾼다. 나아가 통영 옻칠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계승되듯, 이 작은 공간에서부터 나눔의 문화가 이어지길 소망한다.

    “작가도, 작품을 대하는 사람도 방법은 다르지만 이미 예술가입니다. 후원이라고 하면 거창한 일이고, 예술 자체가 특정인의 소유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 곁에 문화는 늘 스며있습니다. 밥도 잘 지으면 예술이잖아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어요. 이곳에서 문화의 벽이 허물어지길 기대합니다.”

    글·사진= 주재옥 기자 jjo5480@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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