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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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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온라인 게임 속의 언어- 최석균(시인·창원경일고 교사)

  • 기사입력 : 2021-10-31 19: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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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례 시간, 교실 문을 열었는데 학급 분위기가 어둡다. 학생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휴대전화 속에 빠져 있다. 누가 오고 가는지엔 관심이 없다. 처음엔 이런 장면에 적이 놀라기도 하고 엄하게 꾸짖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딱히 제재할 명분이 없다. 휴대전화를 거둬 보관했다가 나누어주는 일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고, 게임은 극도의 긴장감과 재미를 주고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급변하는 사회나 교육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 예방을 위한 비대면 수업의 영향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 시대 상당수의 청소년이 위안 삼는 공간이 교실 밖 어딘가에 현실 도피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듯해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정작 큰 문제는 사이버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 속에서 난무하는 비속어와 맞춤법을 무시하는 근거 없는 언어, 성적 은유를 통한 난삽한 표현 등이다. 더구나 허구의 경쟁에서 패했을 때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자존심 손상과 열패감이라는 허상에 빠져, 갖은 독설을 퍼붓는 대화창을 볼 때면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신고를 하면 제재가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원천적 제재는 안 되는 실정이다.

    온라인 게임 속의 언어 환경은 우리가 방치한 사각지대일지 모른다. 이것은 일부 청소년에 한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익명성의 늪에 빠지면 누구나 즉흥적, 감정적인 상태가 될 수 있고 또 현실을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사이버 게임 속에서 무의식중에 체득한 폭력적 언어들과 파괴된 마음들이 실제 현실 속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날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게임 속 공간이 일상에 지친 우리의 정신적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화창에서 오가는 말이 찻잔처럼 부드럽고 향기롭길 기대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작용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고 예방 차원의 제도적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양분 있는 글 한 줄, 따뜻한 말 한마디가 현실적인 고통을 이겨내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기 때문이다.

    최석균(시인·창원경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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