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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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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가후쿠-가마족의 축구 시합-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 기사입력 : 2021-10-20 20: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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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뜨거운 사회와 차가운 사회를 이야기한다. 뜨거운 사회는 생산과 소비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사회다. 경쟁을 자극하고, 성과를 내며, 새로운 것을 만드는 현대사회가 그런 모습이다. 차가운 사회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하며 사회를 움직인다. 큰 변화없이 생활에 균형을 지키며 환경과의 공존을 시도한다. 갈등이나 마찰이 적고 내부적으로도 평등한 경우가 많다. 차가운 사회를 대표하는 것은 원시부족이다.

    차가운 사회는 발전의 개념이 없다. 역사 개념도 희박하다. 어제가 오늘과 같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새로운 것을 꿈꾸며 더 나은 내일을 시도하는 현대인의 삶과는 많이 다르다. 큰 발전이 없는 반복적 일상이지만, 그들은 행복하다. 사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결국 자유와 행복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원시부족은 현대인들보다 앞서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그러고 싶지만 경쟁적 사회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사실 그렇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나 사는 사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상황 내 존재이고, 상황에 의해 구속되며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자본주의적 경제관을 당연하게 여긴다. 인간은 더 나아지려는 욕망을 가졌고, 그 욕망을 잘 활용해야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시문화의 연구자들이 내린 결론은 그렇지 않다. 서태평양의 멜라네시아에 사는 여러 부족들은 ‘쿨라(kula)’라고 불리는 독특한 교역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부족끼리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와 팔찌를 교환한다. 실생활에는 쓸모가 없지만, 장신구로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다. 교역 기간이 되면 소중한 장신구를 카누에 싣고 며칠씩 항해하여 물건을 다른 부족에게 전달한다. 재미있는 것은 아무런 조건 없이 무료로 준다는 것이다. 누구도 장신구를 독점할 수 없다. 1년 혹은 2년 정도를 사용하고 다른 부족에게 넘겨야 한다. 그렇게 소중한 장신구들은 부족과 부족 사이를 끝없이 왕래한다.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쿨라는 경제적 이익이 목적이 아니라 부족 간의 호혜성을 높이기 위한 의례적 행위다. 소중한 것을 나누면서 ‘나는 당신 혹은 당신 부족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는 행위를 통해 친밀감을 형성하고 동맹임을 확인하는 것이 쿨라의 목적이다.

    쿨라는 인간이 돈과 경제적 이익을 보다 교환을 통한 호혜성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경쟁과 성취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구조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나눔과 호혜를 기본으로 하는 원시 부족사회에서는 흔히 발견되는 의례다. 이런 의례는 인간의 본성이 그 사회의 문화와 구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이기적인가 혹은 이타적인가 하는 문제는 인간 자체에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 사회가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고,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명예의 가치를 중시하는 환경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양반이 돈보다 체면을 중요시한 이유는 유교적 사회구조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이 처한 사회구조에 종속되어 끌려가는 존재에 불과한 걸까?

    뉴기니의 가후쿠-가마족이 축구를 배웠다. 그런데 그들은 서구사회의 축구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 방식은 지고 있는 팀이 같은 점수를 낼 때까지 시합을 며칠이고 계속하는 것이다. 시합은 승자와 패자 없이 비겨야 끝이 난다. 승패가 아닌 축제가 그들이 만든 새로운 축구의 방식이었다.

    자본주의와 우리 사회를 비판하기 이전에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만들고 있느냐, 그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가후쿠-가마족의 축구 시합은 말해주고 있다.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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