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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3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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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98) 정기수도(正己守道)

- 자신을 바르게 하고 도를 지킨다.

  • 기사입력 : 2021-09-28 08: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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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계(退溪) 이황(李滉) 천성이 온화하고 겸손하고, 남을 배려하고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저 마음씨 좋은 사람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는 온화했지만, 옳은 일과 그른 일, 바란 것과 비뚤어진 것, 정의와 이익 등의 구분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원칙을 지켜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었다.

    34세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간신 김안로(金安老)가 이조판서를 맡아 조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출세하기 위해서 김안로에게 줄을 대려고 대문 앞이 북적였다. 김안로는 장원급제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고, 시와 문장을 잘 지었다. 인물도 좋아 아주 고상한 선비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성질은 아주 간악하면서 잔인했고, 자기에게 걸리는 사람은 반드시 보복을 했다. 남곤(南袞), 김안로(金安老) 등 간신들이 중종 임금 밑에서 권력을 잡고 사람을 죽였는데, 그 숫자가 폭군 연산군이 죽인 사람 숫자보다 더 많으니, 김안로 등이 얼마나 악질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김안로는 퇴계가 누군지 알았다. 그의 고향이 퇴계의 처가가 있는 영주(榮州)이기 때문이었다. 자기에게 인사하러 오면 젊은 인재를 잘 봐주어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퇴계는 인사하러 가지 않았다. 그 뒤 김안로가 사람을 보내 불렀는데도 가지 않았다. 얼핏 보면 문약해 보일 퇴계가 태산 같은 지조가 있었다.

    김안로는 그 아들이 중종 임금의 사위였고, 좌의정에까지 이르렀다. 조선 중기 최강의 권력자로, 겸임한 관직의 숫자가 세조 때 한명회(韓明澮)보다도 더 많았다.

    퇴계는 그런 무시무시한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자기의 바른길을 걸어갔다. 사악한 짓을 일삼는 김안로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과연 김안로는 퇴계가 조정에 들어간 지 3년 되던 1537년 사돈 중종의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 아들과 며느리는 자기보다 먼저 죽어 집안이 완전히 망했다.

    1545년 을사사화 이후 20년 동안 국가 권력을 독점한 윤원형(尹元衡)과 퇴계는 동방급제한 관계였다. 언젠가 윤원형이 동방급제자 모임인 방회(榜會)를 주도했다. 퇴계는 아프다고 하면서 참석하지 않았다. 역시 대단한 용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조선시대 평안도 지방은 매우 번화한 지역으로 알려졌다. 조정 관원들 가운데 평안도에 갔다가 주색의 함정에 빠져 패가망신한 사람이 줄줄이 나왔다.

    퇴계도 젊은 시절 의주(義州)에 가서 명나라에 보낼 말을 점검하는 일을 맡아 한 달 동안 머물렀으나, 번화한 것을 가까이한 적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평양을 지나왔는데, 평양감사가 대단한 미녀를 꾸며 잠자리에 들게 했다. 퇴계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퇴계가 자기 관리가 얼마나 엄격했는지 알 수 있다.

    사양하는 것과 받는 것의 구분을 엄격히 했다. 그 합당한 의리가 아니면, 하나라도 남에게 받거나 주지를 않았다. 퇴계라는 위대한 인물이 탄생한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퇴계 자신이 철저하게 자신을 잘 관리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 正 : 바를 정. * 己 : 몸·자기 기.

    * 守 : 지킬 수. * 道 : 길 도.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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