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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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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가짜 민심, 진짜 민심- 안상근(가야대학교 부총장)

  • 기사입력 : 2021-09-26 20: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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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 명절을 앞두고 괜히 바쁜 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정치인이다. 민심을 잡기도 해야 하고 민심을 듣기도 해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인다. 특히 대선이 다가오는 시기인 만큼 명절 밥상머리에 올려질 정치 이슈에 대해 어느 해보다 적극적인 여론 몰이에 나서는 모습이었다. 유력 후보들과 연관된 ‘검찰 고발 사주 의혹’과 ‘대장동 개발 사업 의혹’이 함께 불거진 터라 민심 잡기 용 난타전은 더욱 치열해 보였다. 이처럼 명절 민심 잡기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울리고, 거주 지역이 다양하게 섞인 확장된 공간에서 대화의 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슈 선점만 잘 하면 여론의 전국화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한바탕 대국민 여론전을 치른 후 여야는 완전히 엇갈린 추석 민심을 내놓았다. ‘민생이 어렵다’는 공통성은 빼고는 민생 현장을 제대로 훑었다는 유력 정치인들조차 서로 다른 민심을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선 민심에 대해 여당은 정권 재창출이, 야당은 정권 교체가 민심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을 보고 어떤 말을 들은 것일까? 정권을 놓고 사활을 걸어야 하는 여야의 희망 사항이 투영된 것일까? 아니면 동상이몽의 귀를 가진 것일까? 이번에도 국민들의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아전인수식 해석이었다.

    듣고 싶은 말만 듣는 현상에 대해 영국의 인지 과학자 콜린 체리는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이름을 붙였다. 주위가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흥미가 있는 대화는 귀에 쏙쏙 들어오고, 불필요한 얘기는 듣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편 목소리는 잘 들리고 남의 편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사람, 달콤한 소리는 잘 들리고 쓴소리는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면 민심은 왜곡되고 소통은 막힌다. 정치인이 이 효과를 유념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불행히도 이번 추석 민심도 칵테일 파티 효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국민들은 먹고사는 어려움을 말하지만, 정치인은 자기 진영에 유리한 말만 듣는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말하는 민심은 가짜 민심일 가능성이 크다.

    필자가 접한 이번 추석 민심은 안부와 걱정이었다. 코로나 백신 접종은 했는지, 부작용은 없었는지, 함께 하지 못한 가족들은 건강한 지에 대한 안부가 첫 번째 화두였다. 두 번째는 정치인들이 상투적으로 내뱉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이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자영업자, 추석 장 보는데 보탬은 되었지만 나라 돈을 이렇게 자주 나눠줘도 괜찮은지 걱정하시는 어르신, 코로나로 취업 자리가 더 없어질 것을 걱정하는 대학 졸업 예정자, 수도권에서 직장을 구해도 살 곳이 없다는 청년, 학교에서 대면 수업을 확대하면 방역에 문제가 없는지 걱정하는 학부모와 학생, 평생 집 한 채 장만해서 사는데 세금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중년 부부들… 모두 걱정과 한숨만 가득한 싸늘한 분위기였다. ‘정권교체냐 재창출이냐’, ‘대선 후보의 정책과 도덕성은 문제가 없느냐’하는 한가한 소리를 늘어놓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민생 문제보다 권력 문제를 앞세울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여야 할 것 없이 이번에도 추석 민심 잡기는 실패한 듯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는 민심을 잡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민심은 잡고 잡히는 대상이 아니다. 민심을 잡고 싶은 어리석은 정치인은 있을지언정 잡혀주고 싶은 어리석은 국민은 없다. 국민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정치는 민심을 잡겠다고 하겠지만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는 민심을 올바르게 살펴야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민심을 바라보는 진정성에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으로는 민심을 헤아릴 수 없다. 가짜 민심을 진짜 민심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생각한다면 민심을 바라보는 관점과 자세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안상근(가야대학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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