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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0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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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K소주 시대를 연다- 양미경(수필가)

  • 기사입력 : 2021-09-23 20: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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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대 이전이 막걸리 시대였다면 1970년대부터는 소주의 시대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1970년대 이전은 농경시대였다. 논밭에서 일을 하다가 새참에 곁들이는 막걸리 한 사발은 피곤도 풀어주고 고픈 배도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1970년대의 산업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람들은 도시로 도시로 모여들었고, 종일 일하고 지친 심신을 소주 한잔으로 풀었다. 너나없이 산업화의 애환을 풀어놓다 보면 어느새 얼큰해지곤 했었다. 막걸리는 배가 불러 많이 마실 수가 없고 맥주나 양주는 서민들이 넘어다볼 주류가 아니었다. 저렴하면서도 빨리 취한다는 점에서 소주가 ‘딱’이었던 것이다. 요즘 소주는 종류에 따라 16.9도에서 21도 사이를 오르내린다. 예전엔 대부분 25도 정도였고 중부지방 쪽으로 갈수록 도수가 세어져서 30도를 넘는 것도 있었다.

    예전엔 월급 명세서가 현금을 담은 봉투에 기록되어 지급했지만 지금은 통장으로 입금되고 스마트폰에 입금 액수만 뜨는 세상이다. 현금으로 지급하던 시절엔 퇴근시간만 되면 저잣거리 노천 주점이나 허름한 식당에서 월급봉투를 확인해가며 소주잔을 기울였었다. 그것은 그냥 술이 아니었다. 한 잔 소주는 노동의 피로를 풀어주고 미래의 불확실함에 대한 걱정을 잊게 해주는 치료제였다.

    전후 20세기 후반을 숨차게 달려온 50대 이상은 산업화의 최전선에서 죽어라 온몸으로 뛰었고, 가족과 사회의 기둥이란 사명으로 말 못 할 시련과 애환을 묵묵히 견뎌내야만 했었다. 대한민국 사회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것을 기적이라 말하지만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주머니가 넉넉잖은 산업역군들에게 위로가 되고 친구가 되어준 것이 소주였다. 소주를 빼고 어찌 그 시대 산업현장의 땀방울을 논할 수 있겠는가.

    그런 소주가 지금 세계화의 문턱을 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소주가 넘고 있다는 문턱은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의 일이 아닌 세계 최강국 미국 땅에서 일으키는 바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 선두를 장식한 ‘KHEE’라는 소주는 미국 ‘할리우드 문화의 여왕(Culture Queen)’으로 불리는 한국계 미국인 에바 차우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지금 미국에서 영화계 최고 권력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모국인 한국을 알리려는 마음으로 이 소주를 만들게 되었고 마케팅도 직접 하며 증류주 방식으로 주조한 고급소주라 한다. 그 외에도 몇몇 유명 인사들이 소주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여보(Yobo) 소주. 토끼(tokki) 소주 같은 소주들이 한국의 이미지를 업고 세계 제패에 나선다는 소식은 신선하다.

    이미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부드러운 막걸리와 짜릿한 맛의 소주가 지구촌의 친구가 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여기에다 소주에 깃든 한국인의 정신까지를 홍보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우리들이 극복해온 의지를 느끼고 힘을 얻는 친구 같은 소주가 되기를 희망하고 싶다. 세계인의 피곤을 풀어주고 몸과 마음을 위로해주는 음료가 되어, 연인과 함께 저녁을 즐기는 소주, 가족들과 함께 내일에 건배하는 소주, 그런 술이 되었으면 좋겠다. 만방의 국가가 소주잔을 부딪치며 한국의 친구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양미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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