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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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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희망가-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 기사입력 : 2021-09-12 19:5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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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년대 망국의 어둠 속에서 ‘희망가’라는 노래가 크게 유행했었다. 1921년에 발표된 노래다.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 희망가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가사의 분위기는 칙칙하다. 좀 허무주의 같다. 그래도 작가는 이 제목에 뭔가를 의탁하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 2021년, 그로부터 꼭 100년이 지났다. 무슨 기념처럼 이 노래가 다시 생각난다.

    그 사이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일본의 지배에서 독립한 우리는 이제 일본과 어깨를 견주는 선진국이 되었고 문화, 기술 등 일부에서는 일본을 추월하기도 했다. 기나긴 역사에서 상국 혹은 종주국 행세를 하던 중국도 우리를 일단 선진국으로 바라본다. 미국을 위시한 G7에도 여러 차례 초청되면서 거의 준 회원국 취급을 받고 D10의 일원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긍지 내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 과정에서 피와 땀을 흘린 선배 세대들에게 우리는 엎드려 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모두에게다. 그들의 노력과 희생 없이는 오늘의 이 영광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솔직히 성찰해보자. 지금 우리의 표정은 어떠한가. 그다지 밝지 않다.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 때문만도 아니다. 우리의 현실이 여전히 ‘이 풍진 세상’이기 때문이다. 바람은 잦아드는 날이 없고 먼지는 걷히는 날이 없다. 매일매일 전해지는 뉴스만 봐도 이건 곧바로 확인된다. 이런 세상에서도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사람은 물론 있다. 누군가는 고관대작이 되고 누군가는 떼돈을 번다. 그러면 희망이 족할까? 그들의 대답을 한번 들어보고 싶다. ‘…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나마 양심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특히 ‘있는’ 사람은, 자신의 결과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부귀영화도 말하자면 선택의 결과인데, 그 선택은 물론 각자의 실존적 선택이지만, 동시에 또한 세계에 대한 선택이기도 하다고 저 사르트르가 가르쳐준 바 있다.

    부귀영화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거친 바람을 일으키고 탁한 먼지를 일으킨다. 세상의 풍진은 사람이 일으키는 것이지 저절로 이는 것이 아니다. 철학적으로는 상식이지만, 그 풍진은 욕망과 욕망의 충돌에서 생겨난다. 그 욕망이 개인을 넘어 집단화할 때, 즉 패거리 혹은 진영의 욕망이 될 때 그 바람과 먼지는 더욱 거세게 인다. 입장의 충돌, 견해의 충돌이 되기 때문이다. 아니, 그 핵심은 결국 이익의 충돌이다. 철학은 이것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고 간파한 홉스의 철학이 그 대표 격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이 풍진 세상’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을까? 그게 다일까? 아니다. 어쩔 수 있다. 다른 방향도 있다.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라고 포이어바흐는 가르쳐줬다. 저 최제우의 ‘인내천(人乃天)’도 같은 말이다. 이것도 진실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이 양면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다. 그쪽으로 가면 된다.

    결국은 선택이다. 자기를 선택하고 세계를 선택하는 실존적 결단을 우리는 각자 그때그때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선거도 그런 실존적 선택의 일환이다. 그게 나를 결정하고 세계를 결정한다. 이는 단순히 1번이냐 2번이냐, 진보냐 보수냐의 선택이 아니다. 우리의 눈은 정의냐 부정이냐를 바라보아야 한다. 선이냐 악이냐를 바라보아야 한다. 두 눈을 부릅떠야 한다. 저 풍진에 언제까지나 시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풍진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다시 희망을 노래하자. 로마의 철인 키케로의 말대로 “숨을 쉬는 한, 희망은 있다(dum spiro, spero).”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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